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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9년 조선 해골선(海鶻船) / 그 해골 아님~!
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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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2-09-19 00:07:53 조회: 550  /  추천: 1  /  반대: 0  /  댓글: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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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선(고창석, <조선수군과 해양유물 도록>, 장보고, 2007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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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선제략. 홍주성역사관 소장

1739년(영조 15) 바로 해골선(海鶻船)이 개발되었다. 그 중심에는 충청남도 당진에서 세거하고 있던 담양전씨 전운상(田雲祥)이 있었다. 당시 전라좌수사였던 그는 중국 병서인 '무경절요'에 기록되어 있는 병선의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는데, 배 모양이 송골매[鶻=골]와 같다고 해서 해골선이라고 불렀다. 이 배는 선수가 낮고 선미가 높은 유선형 모양으로 설계되어 바람의 저항을 상쇄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또한 배의 양옆에는 날개가 있어 파도가 높더라도 전복될 위험이 적었고, 지붕을 가지고 있어서 외부에서 내부를 볼 수 없게 설계되었다. 이로 인해 유사시 아군의 행동을 적에게 노출시키지 않아 승선한 전투원의 생존율을 높였다. 이 해골선은 저판의 길이가 11.25m(37.5척)이고, 승선인원은 약 56명이었다. 영조는 이 해골선의 성능을 파악하고, 삼도수군사령부인 통제영과 각도 수영에 배치하라고 지시하였다. 남아 있는 해골선의 도안이 마치 오리배와 같아 우스꽝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당대 외교 상황과 시대 흐름을 파악하고 이에 대응하고자 독자적인 기술로 판옥선, 거북선, 해골선 등 지속적으로 만들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방산비리로 시끄러운 지금은 더욱 그렇다.

출처 : [유물로 본 충남 역사문화] (17) 18세기 조선 수군의 새로운 전함, 전운상의 해골선(海鶻船) < 유물로 본 충남 역사문화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금강일보
http://www.gg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554995

추천 1 반대 0

댓글목록

내용이 흥미롭네요.
수학자님 잘 읽었습니다!

    1 0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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