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MyGolfSpy 공식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퍼터를 마골스 카페 부매니저 '마골스'님이 쓰신다 해서 더욱 조심스러운 내용입니다만,
그래도 바른 말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하는 게 마이골프스파이 정신이라고 생각해서 씁니다.
------
나온 지 몇 년 안 된 조금 신기한 퍼터가 있습니다. 퍼터 이름이 "탑스핀Topspin"입니다.
상표 로고의 O 부분에 앞으로 굴러가는 화살표를 넣어 탑스핀 효과를 표현했습니다.
클럽페이스가 평평하지 않고 둥그스름합니다. 즉 정해진 로프트가 없는 roll 형태입니다.
이 특이한 디자인은 어떤 원리로 어떤 효과를내는 걸까요? 3분짜리 광고 영상에 모든 설명이 들어있습니다.
[광고 내용 단계별 요약]
- 유명한 선수 Bobby Locke는 퍼팅 시 공에 탑스핀을 가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한다
- 퍼팅 시 탑스핀은 공과 잔디가 서로 간섭하는 작용을 최소화해 일관성을 높여준다
- 이상적인 퍼팅은 1)탑스핀이 가해지고, 2)미끄러짐skidding이 없고, 3)튀어오름hopping이 없는 퍼팅이다
- 유명한 퍼터(스카티카메론, 오딧세이)와 탑스핀 퍼터를 비교실험해 보았다. 객관성을 위해 진자운동 기계에 설치해 실험함
- 타사 퍼터들 모두 공에 백스핀이 걸리고 skidding,hopping이 심하다
- 반면에 우리의 탑스핀 퍼터는 공에 탑스핀이 걸리고 skidding, hopping이 전혀 없다
- 탑스핀 퍼터는 페이스 윗면과 아랫면이 모두 곡면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위아래로 그루브를 넣었다
- 둥근 윗면은 기어효과gear effect를 유발해 공이 즉시 앞으로 구르도록 해 준다
- 타점이 약간 높거나 낮은 경우 위아래 그루브가 탑스핀을 유발한다
- 또한 둥근 아랫면은 잔디의 저항을 쉽게 통과하게 해 주어 그린 주변에서다양한 상황에 응용 가능하다
- 무게배분을 힐-토 양 극단에 배치해 변두리에 맞았을 때 관용성이 높다
-----
광고에 따르자면 지금까지 없던 이상적인 퍼터입니다. 여지껏 사람들이 칭송하고 비싸게 구입하던 명품 퍼터들은 이상적인 퍼팅의 세 가지 조건을 전혀 실현하지 못하는 결함품이었군요. 그들과의 차별성을 초고속 카메라와 엄격하게 통제된 변인으로 검증하는 데 성공한, 훌륭한 광고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그럴 리가...
광고에서 잘못된 점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지적하겠습니다.
1) 실험 설계
이 광고에 쓰인 실험은, 의도적인지 미필적 고의인지 몰라서 그런 건지 모르지만, 결정적인 요인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고정시켜 놓은 실험입니다.
채로 공을 쳤을 때 스핀은 어떻게 만들어지죠? 타격면이 진행방향과 비스듬하니까 만들어지는 게 스핀입니다. 모든 스핀은 타격면의 각도(로프트loft)와 진행방향(어택앵글attack angle) 두 가지 요인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퍼터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타격시 로프트에서 어택앵글을 뺀 값을 스핀 로프트spin loft라고 부릅니다. 그 크기가 크면 클수록 스핀량이 커집니다.
그 값이 양수이면 백스핀이 생기고 음수면 탑스핀이 생깁니다.
어떤 장비로 치든 간에 어택앵글에 비해 로프트가 아래를 향하면 탑스핀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명선수 Bobby Locke의 퍼팅을 포함해 모든 훌륭한 퍼팅, "굴림rolling이 좋은 퍼팅"은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킨다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영상에선 어떻게 설정돼 있죠? 샤프트가 뒤로 기울어 있어서 원래 설정된 로프트보다도 더 높게 맞도록 돼 있습니다.
이래서는 어떤 퍼터를 쓰든 무조건 백스핀을 갖고 출발하며 높은 발사각으로 튀어오르게 돼 있습니다. 아참 예외가 딱 하나 있네요. 둥근 디자인을 가진 우리의 탑스핀 퍼터!
원래 설계된 목적대로 치지 않고, 백스핀이 걸릴 수밖에 없는 설정으로 비교실험하면 어떤 퍼터든 천하에 무능하고 괘씸한 결함품이 되고야 맙니다. 하지만 올바른 형태와 궤적으로 임팩트되면 다른 모든 퍼터도 똑같이 탑스핀과 낮은 발사각으로 이상적인 출발이 가능합니다. 탑스핀 퍼터의 장점을 굳이 꼽자면 다른 퍼터와 달리 자세와 로프트에 관한 고민을 덜 해도 된다는 점이 있겠네요. 그 점은 인정합니다.
이 시점에서 이미 타사 제품을 명시적으로 비하하는 허위 광고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닙니다.
2) 원리 설명
1:50 경 등장하는 Jack Kuykendall이라는 수학&물리학 교수가 원리 설명을 시작합니다. 검색해 보니 골프 교습 분야에서 유명합니다. 하지만 유명하다고 항상 옳은 건 아니죠. 전공이 부끄럽게도 틀린 말을 늘어놓으며 허위 광고에 일조합니다.
- 둥근 윗면은 기어효과gear effect를 유발해 공이 즉시 앞으로 구르도록 해 준다
>> 드라이버 설계에서 기어효과와 벌지/롤에 관해 어설프게 공부한 사람이 전형적으로 하는 오해입니다.
둥근 형태가 기어효과를 만드는 게 아니라, 기어효과에 대응하기 위해 둥근 형태를 만드는 것입니다.
기어효과는 접촉면과 회전중심 거리가 멀 때, 그리고 충격력이 회전중심을 빗겨갈 때 생기는 것입니다.
둥근 형태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광고에 등장한 블레이드형 퍼터는 기어효과가 최소화되는 디자인입니다.
차라리 큼직한 UFO형 헤드로 설계하고, 무게중심이 멀찍이 떨어져 있어서 기어효과가 나타난다고 광고했더라면 '과장 광고'로 불릴 순 있어도 '허위 광고'라고 하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윗부분을 둥글게 설계해서 기어효과를 갖다붙인다?
그럴싸해 보이는 데에 집중하고 실질적인 효과엔 관심도 없는 제작자에 광고출연자들이로군요. 진심으로 불신하게 됩니다.
윗부분을 둥글게 설계한 이유는 완전히 틀렸지만, 굳이 장점을 찾자면 한 가지는 있습니다.
필 미켈슨 옛날 방식처럼, 샤프트를 앞으로 많이 기울인 퍼팅 자세로 치더라도 타격 시 로프트가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제작자들이 알긴 할 지 미지수네요...
- 타점이 약간 높거나 낮은 경우 위아래 그루브가 탑스핀을 유발한다
>> 그루브가 특이하게 설계되지 않았다면 그루브 자체가 스핀을 유발하는 효과는 없습니다.
스핀은 어디까지나 위에 언급한 스핀 로프트가 만드는 것이고, 그루브는 그걸 보조할 뿐입니다.
- 또한 둥근 아랫면은 잔디의 저항을 쉽게 통과하게 해 주어 그린 주변에서다양한 상황에 응용 가능하다
>> 이건 맞는 말입니다. 그리고 사실 위에 실험 설계에 언급했듯이, 샤프트를 앞으로 기울이지 않은 잘못된 퍼팅자세에서도 로프트가 낮아지게 만드는 핵심 설계이기도 합니다. 다만 타점이 너무 높을 경우, 공을 바닥으로 밀어내서 역으로 튀어오르는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 무게배분을 힐-토 양 극단에 배치해 변두리에 맞았을 때 관용성이 높다
>> 맞는 말이긴 한데...수 십년 전부터 어지간한 퍼터들은 다 그렇게 설계해 왔습니다.
-------
[총평]
타사 제품 명시적 비하
원하는 결과만 취하려는 편향된 실험설계
권위에 호소하는 엉터리 설명
오래도록 안 좋은 기억으로 남은 허위광고였습니다.
하지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허위광고는 미워하되 장비는 미워하지 맙시다.
탑스핀 퍼터는 실험 영상에서 보여준 그대로, 공을 올바른 발사각(0-2도 사이)과 약간의 탑스핀으로 출발시켜 아주 좋은 구름rolling을 만드는 좋은 퍼터인 게 맞습니다.
다만 다른 모든 퍼터들도 올바른 발사조건을 만들기 위한 올바른 타격자세로 쳤을 때 똑같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탑스핀 퍼터는 그런 까다로운 자세에 관한 고민으로부터 골퍼를 해방시켜 줄 수 있습니다.
둥근 헤드 형상 덕분에 어떻게 치더라도 타점의 로프트는 0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어지간하면 백스핀이 나기 어렵고, 상향타격만 이루어지면 손쉽게 탑스핀이 (약간) 걸립니다.
테일러메이드의 PureRoll 그루브 기술과 함께, 공의 굴림rolling을 중시하는 골퍼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제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