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군의 동부전선의 몰락 (22)- 체르카시 전투 2부 > 역사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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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의 동부전선의 몰락 (22)- 체르카시 전투 2부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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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6-09-24 15:09:11 조회: 4,771  /  추천: 1  /  반대: 0  /  댓글: 0 ]

본문

(오래 전 이야기를 옮겨 오고 있습니다. 명칭과 표기법이 달라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체르카시 전투를 2부에 나누어 설명하려고 했는데분량이 워낙 많아서 3부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포위망 안에 갇혔던 수비군이 본격적인 탈출에 나서지만...

 


 

그동안 제가 기회가 될 때마다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료를 끼워넣어서 이해를 도왔는데이번에는 밀리터리프레임 출판사의 독일육군전사에서 한 장면을 인용했습니다.

어느 한 지역이 아니라 동부전선 전체에서 러시아군의 돌파가 시작되었기 때문에병력과 물자가 부족한 독일군은 계속 수세에 몰리고 전멸직전에 포위망에서 탈출하게 되는 것입니다.

1944년 중반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연합군이 상륙하고 동부전선의 귀중한 기갑전력을 빼가면서부터는 동부전선은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밀리터리프레임 출판사의 독일육군전사에 대해서는 다음에 보다 자세하게 소개하겠습니다만독일군 역사에 대해 보기 쉽게 잘 정리되어 있는 필독서 중의 하나입니다.

이번 기회에 한 권 구입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전차연대의 실리옥스(Ciliox) 중위는 무전기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헤드폰을 귀에 가져갔다.연대장인 프랑크(Frank) 중령이었다.

"실리옥스다리로 당장 달려와."

중대 전차와 함께 실리옥스는 러시아의 T-34, 대전차포야포가 기다리고 있는 동쪽 다리로 이동했다.

"건너간다."

그러나 폭음과 함께 다리의 철제구조물이 무너져 내렸고 팬더전차는 옆으로 간신히 멈췄다실리옥스는 욕설을 퍼부으며 개울로 내려갔다기갑척탄병은 마을의 남쪽을 청소하고 있었다이 때가 2 12일이었다.

 

2 13한스 스트리펠(Strippel) 하사는 팬더전차를 전날 미리 정찰해둔 얕은 개울바닥으로 몰고 갔다반대편에는 러시아의 제근위전차군단의 T-34 12대 정도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경험많은 독일전차병과 팬더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대대의 2개 팬더 중대가 합류했고 늦은 밤이 되자 독일군은 1km정도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월요일이었던 14일은 한 주를 출발하기에 좋은 날이 아니었다기온이 뚝 떨어졌지만 두꺼운 얼음을 얼릴 정도는 아니었고 다리를 보수할 부품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던 스트리펠 하사와 다른 병사들은 오후 5 45분에 리샨카 북동쪽 외곽의 다리를 기습해 장악했다다리를 숨어서 방어하고 있던 2대의 T-34도 불태워 60번째 킬을 기록했다.

새로운 다리를 점령했다는 소식을 곧 퍼져나갔고 군단 사령관 브라이트는 정찰기를 타고 바로 도착해 제전차사단 사령부에서 콜(Koll) 장군을 만났다우물쭈물하다가는 기회가 바로 사라질 것이 뻔했다.다음 공격목표는 고지 239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이 고지는 리샨카 북동쪽 3.5km 지점에서 포위망으로 통하는 길을 장악하고 있는 요충지였다이 고지만 점령하면 구원작전을 거의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이 고지에서 포위망 외곽까지 겨우 10km밖에 안되었고 적의 저항이 없다면 1시간이면 돌파할 수 있는 거리였다.

 

고지 239. 지리적 명칭에 불과했지만 그 주변은 동부전선에서 잊혀지지 않는 피로 물든 역사적인 장소가 된다.

기갑그룹 프랑크는 중전차 연대의 타이거와 팬더의 지원을 받아 고지 239를 공격했다그동안 제16 전차사단은 적의 모든 반격을 막아냈다그러나 러시아 제근위전차군단의 지휘관도 이 고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러시아군은 북쪽 메드빈의 주도로를 따라 계속 반격했고 남쪽과 동쪽의 숲에 숨어있던 기갑부대를 전진시켰다. 2 16러시아군은 동쪽에서 20남동쪽에서 30대의 T-34로 공격해왔다쇠트(Soth) 대령의 포병은 러시아 보병을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게 못박아 두었고 팬더 전차는 러시아 전차를 되돌려 보냈다스트리펠과 동료의 팬더 7대는 27대의 T-34를 불태우는 대단한 전과를 올렸지만 전세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70명의 기갑척탄병과 3대의 전차가 고지 239 중간에 있는 오크탸브르(Oktyabr)를 점령했지만 러시아군의 반격에 밀려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러시아군은 도로 양 옆의 울창한 숲에서 병력을 쏟아내며 계속 공격해왔다라이스탄다르테의 기갑척탄병 대대도 소용이 없었고 루델의 스투카 지원도 소용이 없었다.

2 16일 저녁이 되면서113 기갑척탄병 연대의 제대대는 600명 중 60명만이 남았고 제기갑척탄병 연대나 라이브스탄다르테 사단도 거의 비슷한 처지였다중대 병력은 이제 10명 정도로 줄어들었고 상태가 좋은 중대라고 해봤자 12명이 고작이었다중대장이나 소대장은 이미 전사했거나 부상당한 상태였다전차 연대도 겨우 12대의 팬더와 몇 대의 4호 전차만이 움직일 수 있었다16 전차사단은 리샨카 북쪽 12km 지점의 도로에서 러시아군의 반격을 받아 꼼짝도 못하고 있었고 제17 전차사단은 훨씬 후방에서 러시아 전차군단의 공격을 받아 전멸하지 않고 있는 것만도 다행이었다라이스탄다르테 사단의 전투력은 거의 소진되었고198 보병사단은 이제 지도 위에서나 존재하는 병력이었다전차군단의 구원작전은 실패한 것이 분명해졌다. 56,000명의 아군이 갇힌 포위망을 겨우 10km 정도 두고 구원군은 기력을 잃어버렸다전차군의 참모장인 벤크(Wenck) 장군은 자신이 지휘했던 제전차사단으로 뭔가 해보려고 급하게 오토바이를 타고 왔지만 러시아군의 포위망을 깨뜨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포위망 안에서는 병사들이 탈출구에 모여 서쪽을 바라 보고 있었다저 멀리에서 들리는 전차포의 굉음과 불길을 보면서 "구원군은 언제쯤 오는 거지?"라며 서로에게 묻고 있었다

 

2 7일부터는 독일 최고사령부도 더 이상 러시아군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으며 외부로부터의 구원작전이 실효가 있을 것인지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코르순 포위망은 코르순과 고로디쉬체(Gorodishche)두 곳을 중심으로 51km 정도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뻗은 모양이었기 때문에 남쪽의 쉬폴라(Shpola)지역으로 제47 전차군단의 구원군이 접근하고 포위망 안의 독일군도 그쪽으로 나가는 것이 유리했다.그러나 제24 전차사단을 이리 저리 보내는 황당한 짓을 하는 동안 남쪽으로부터의 구원작전은 물건너가게 되었고 다시 서쪽으로부터의 구원군을 향해 최대한 서쪽으로 전선을 움직여야만 했다이제 수비전선을 완전히 반대방향으로 늘여야 하는데이건 마치 적으로 가득 찬 바다에서 전함을 선회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코르순 포위망은 이미 러시아군의 강한 압박을 더이상 버텨내기 힘든 상태였습니다그림은 독일군의 수비선을 돌파하는 러시아군의 모습으로 우크라이나 전쟁기념관에 걸려있다고 합니다.

원본을 구해보려고 했는데 보이지 않아서 그냥 작은 그림으로 가져와봤습니다.

 

2 7일 오전 11 408군은 무전으로 두 군단에게 "스템머만 그룹은 전방의 전선을 줄인 후에 쉔데로브카(Shenderovka) 방향으로 전선을 움직여 외부에서 구원군이 도착하면 합류할 수 있게 한다"라는 명령을 내렸다.

스템머만 장군은 전선을 반전시키는 어려운 작전을 시작했다동쪽의 수비군은 고로디쉬체를 포기하고 북쪽에서는 제88 보병사단이 야노브카(Yanovka)의 참호를 비웠다비행장이 있는 코르순은 보급품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에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전선을 반전시킨다는 것이 말로는 쉽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모든 도로는 진흙 아래로 가라앉았고 철로만이 유일하게 이동할 수 있는 길이었다.

2 11일부터 13일까지전선에서 풀려날 병력들이 쉔데로브카노바야-부다(Novaya-Buda), 코마로브카(Komarovka)의 러시아군을 몰아내고 남서쪽으로 탈출할 거점을 마련해야 했다앞이 탁 트인 언덕 위에 진지를 마련한 노바야-부다의 러시아군을 상대로 아무런 엄폐물도 없이 제72 보병사단의 제105 기갑척탄병 연대가 나서게 되었다.

연대장은 야습을 하기로 결정했고 작전계획은 아주 단순했다총검야전삽기관단총기관총 등 모든 개인화기를 들고 적에게 달려가 어떤 피해를 입더라도 적을 몰아내고 제172 포병연대의 포 4문을 배치시키는 작전이었다.  

 


 

포병연대가 포를 말로 견인해가고 있습니다. 

 

작전은 2 11일 저녁 8 30분에 시작되었다흰색 천으로 위장을 한 연대원이 러시아군 참호에 접근해 초병을 가볍게 제압하고 참호에 뛰어들었다눈 앞에서 움직이는 것은 모두 개머리판이나 삽에 맞아 쓰러졌고 뒤따르던 병력이 양쪽 참호 모두를 청소했다.

 

기습은 성공했다단 한 번의 기습으로 연대는 러시아군 진지를 점령했고 말이 포를 끌고 왔다자정이 넘었을 무렵동쪽에서 갑자기 러시아군의 트럭 행렬이 다가왔다아마도 쉔데로브카로 향하는 모양이었는데그 중에는 다연장 로켓트럭도 몇 대가 보였다장갑차에 실려 있던 2cm 대공포가 불을 뿜었고 공격을 받은 러시아군의 트럭에 불이 붙으면서 사방이 환해졌다노바야-부다에 대한 공격은 새벽 1시에 시작되었고 2 30분 정도에 마을을 점령했다기습을 받은 러시아 수송대와 기병대는 잠에서 덜 깬 채로 달아났고 250명이 포로로 잡혔다. 

 

72 보병사단의 우측에서 벌어진 공격도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함부르크 SS "게르마니아기갑척탄병연대는 두 번째 목표물인 쉔데로프카를 공격했고 치열한 백병전 끝에 코마로브카(Komarovka)까지 손에 넣었다.

2 13일인 일요일코르순의 동쪽에서 병력이 빠져나왔다그 대신에 제72 보병사단이 코마로브카를 지켜냈다노바야-부다에서는 벨기에 지원병으로 구성된 "발로니(Wallonie)" 공격여단이 6대의 전차와4문의 대전차포를 가지고 빼앗긴 요충지를 되찾으려는 러시아군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70% 가까운 사상자를 냈다.

 


 

숲에 배치된 2cm 대공포 장갑차입니다대형화기가 없었던 코르순 수비군은 이런 대공포조차도 귀중한 전력이었지만 그마저도 모두 파괴되거나 연료와 탄약부족으로 폐기됩니다

 

2 1572 보병사단은 코마로브카 북부의 킬키(Khilki) 마을을 점령했다이 마을은 포위망에서 탈출할 때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요한 요충지였는데 제105 기갑척탄병 연대가 제 역할을 다해주었다.

바로 이 순간이포위망 외곽에서 제전차사단과 중전차 연대가 고지 239에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루델의 스투카 비행대가 반격하는 러시아군을 뒷덜미를 잡아 더 이상 못 움직이게 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10대의 전차와 10개의 기갑척탄병 대대가 더 있었더라면 해볼 만 한 작전이었지만,이제는 중전차 연대의 연료까지 다 떨어진 상태였다.

 


 

코르순(체르카시포위망 탁출작전의 각 단계를 잘 보여주는 지도입니다클릭해서 큰 그림으로 띄우고 이야기와 함께 참조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