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환기시킨 공교육의 존재 의미..학교가 준 건 지식 그 이상이었다

이성희 기자 2020. 7. 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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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백년대계’ 한국의 교육은
코로나 세대의 내일을
어떻게 이끌어줄 것인가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전국 초·중·고등학교는 6월에야 문을 열었다. 그마저도 모두 문을 연 것은 아니다. 대입 일정에 쫓기는 고3은 매일 등교하지만, 학년과 지역에 따라 지금도 많은 학생들이 일주일에 단 하루만 학교에 간다. 정상수업으로 인정받는 온라인수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또래와의 소통·교감, 지식탐구 등 예전에 작동하던 학교의 기능은 멈춰 섰다. ‘학교 부재의 시대’라는 자조도 나온다.

혹자는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학교에 가야 하느냐’고. 또 다른 누군가는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라도 학교에 가야 하지 않겠냐’고. 두 목소리는 방역과 안전, 학습과 배움을 넘어 학교와 공교육의 존재 이유, 학교의 돌봄 역할 등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3월 초 신학기 개학이 미뤄진 후 넉 달이 흘렀지만, 교육현장은 여전히 ‘가보지 않은 길’ 위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무너진 성장 생태계”

초등학교 2학년 이은찬 군이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소재 아파트에서 EBS를 통해 수업 교과 방송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학부모들, 학교의 부재 절감
“책임감·의무감·관계맺기…
학교가 아이에게 가르친 건
부모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성장과정에 관한 것이었다”

학교가 문을 열면서 조심스레 일상을 되찾은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서울 용산에 사는 손모씨(48)는 최근 집에서 말수가 크게 줄었다고 했다. 고1·중2·초5 세 아이의 집콕생활을 마주하면서 나타난 증상이다. 예전 같으면 퇴근 후 아이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았겠지만, 학교에 가는 날보다 안 가는 날이 많은 요즘 아이들의 일상은 단조롭다. 마땅한 대화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늦은 아침에 일어나 온라인수업을 듣고, 학원에 간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게임을 하는 게 일상의 전부다.

아이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맞벌이인 손씨 부부는 예전과 다름없이 출근을 한다. 하루 일과를 그냥 흘려보내는 듯 불규칙한 생활에 빠진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을 매일 마주하는 부모는 충돌한다. 손씨도 휴교 초반에 ‘책 좀 읽으라’고 잔소리했다가 아이들과 사이만 나빠졌다. 어느 순간 아이들은 자의 반 타의 반 ‘방치’돼 있다. 그는 “아이들이 ‘좀비’가 되는 것 같다”며 “학교는 또래와 함께 생활하며 알게 모르게 성장하던 곳인데, 학교가 멈추면서 성장 생태계가 완전히 무너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학교가 맡고 있던 돌봄 영역을 실감하고 있다고 학부모들은 고백한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조모씨(43)는 “학교가 해온 돌봄은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입히는 게 아니라 사회화에 필요한 관계맺기와 책임감, 의무감 등 정서적인 성장과정에 대한 것들이었다”며 “결코 부모가 감당할 수 없는 문제로, 학교가 꼭 있어야 하는 곳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학교의 빈자리는 사교육이 꿰차고 있다. 학교 문은 닫았지만, 개별 과외와 소수정예 학원에는 아이들이 몰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기 일산에 사는 이모씨(43)는 딸아이의 하루 시간표를 학원 일정으로 빼곡하게 채웠다. 초3인 아이는 월요일에는 영어·피아노·수학 학원을, 화요일에는 발레·논술 학원을 다닌다. 등교수업이 늦어지면서 지난 4월부터는 주 2회 가던 수학학원을 주 3회로, 주 3회 받던 영어수업을 주 4회로 늘렸다. 이씨는 “학교에서 학습이 거의 이뤄지지 않다보니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주변을 봐도 아이의 학력격차와 학업공백을 걱정해 서로 경쟁하듯 학원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평가와 학습만 남은 교실

서울 마포구 서울여자고등학교에서 한 선생님이 수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학교엔
학습·평가뿐…교사도 ‘답답’
“선생님들이 수업만 해서
학교가 재미없어졌어요”

학부모들은 코로나19로 학교에 교과지식 전달 기능은 크게 바라지 않게 됐다. 온라인수업 중심체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미 그 영역은 1타강사 중심으로 입시업체의 인터넷강의(인강)가 장악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대신 가정에서도 하지 못하고, 인강에서도 대체하지 못하는 더 큰 역할을 기대한다. 손씨는 “예전에는 교내 프로그램이라면 학습적인 것을 원했지만 이제 학교에 바라는 것은 교우관계나 창의력 계발, 또래에 맞는 생활 프로그램 등”이라며 “교사의 역할도 ‘티칭’에서 ‘코칭’으로 바꿔 아이들의 삶을 돌봐줄 수 있는 개인상담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경원 전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도 향후 필요한 교사의 역할 중 하나로 ‘안내자’를 꼽았다. 전 전 소장은 “학생이 원하는 교육과정이 있을 때 지식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공부하는 방법과 절차를 알려주고 자기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끔 안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시대의 학교에 남아 있는 기능은 학습과 평가뿐이다. 경기 화성에 사는 유모양(13)은 등교할 때마다 교과서 7~8권을 들고 간다. 격주로 등교를 하는데, 한 주간 온라인으로 배운 내용과 숙제를 확인받기 위해서다. 유양은 “등교 첫 주부터 국어·수학·체육·도덕 과목 수행평가를 봤다”며 “선생님들이 수업만 해서 학교가 재미없어졌다”고 말했다. 교육의 본질적 가치이자 추구 목표인 인성과 전인교육은 교실 벽에 걸려 있는 교훈처럼 문구로만 남아 있다. 학교는 언제 확진자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불안에 수업 진도 맞추기와 수행평가 치르기로 하루하루 바쁘다.

입시와 진도를 우선하는 한국 교육의 오랜 습성이 반영된 결과다. 교육계에서는 ‘코로나 세대’의 장기적인 학습 결손을 우려한다. 손지희 진보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최근 한 토론회에서 “비상상황에서도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교육과정에서 추려내지 않은 채 온라인수업으로 정규 교육과정을 대체하고 있다”며 “아동·청소년 발달과는 무관한 진급과 진학을 위한 평가와 생활기록부 빈칸 채우기를 위한 형식적인 과정”이라고 말했다.

■돌봄공백 드러낸 학교 빈자리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이 하교하고 있다.

‘집콕’이 일상처럼 된 학생들
더욱 공고해진 사교육 시장
돌봄공백도 여실히 드러나

학교의 부재는 우리 사회의 돌봄공백 현실도 여실히 드러냈다.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한 사상 초유의 개학 연기를 발표하며 맞벌이 부부 등을 위한 자녀 돌봄의 대안으로 ‘학교 안 돌봄’ 방식인 긴급돌봄을 내놨다. 당초 중식을 제공하고 오후 7시까지 운영한다고 발표했으나 교육현장에서는 거의 지켜지지 않아 뭇매를 맞았다. 법적 근거 없이 일방통보로 이뤄진 하달 방식의 정책이 불러온 혼선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학교의 돌봄 역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었다는 점이다. 최근 교육부가 돌봄교실을 학교 사무로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가 “학교는 보육기관이 아닌 교육기관”이라는 교원단체들의 반대에 부딪혀 철회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선 교사들은 대개 ‘학교 안 돌봄’을 반대한다. 학교의 핵심 기능은 보육이 아닌 교육이라는 반대 배경에는 교사의 업무 과중 문제가 있다. 정부는 저소득층 및 맞벌이 부부의 돌봄공백 해소 등을 위해 초등 돌봄교실과 방과후학교를 학교에 욱여넣었을 뿐 인력 충원과 재정 지원은 하지 않았다. 프로그램 구성과 강사 공고 및 선발·채용, 수강 신청 등의 업무가 고스란히 교사의 몫으로 남았다. 방과후학교 전담 교실이 없어 급히 수업을 끝내고 교실을 비워줘야 하는 학교도 많다. 교육활동이 오히려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과 보육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교사들도 알고 있다. 최근 충남 천안에서 가방에 갇혀 죽어간 아이나 경남 창녕에서 학대를 받다 탈출한 아이 모두 등교가 정상적으로 이뤄져 학교가 관심을 갖고 관리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이다. 지방의 한 중학교 교사는 “교사들도 걱정한 게 아이들이 밥은 잘 먹고 있으려나, 집에서 뭐 하고 지낼까였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학교 급식이 좋았을 텐데 제대로 밥이나 먹고 있을지 걱정했다”며 “교사로서 보육이냐 교육이냐를 분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교육이 주지만, 보육도 당연히 안고 가는 거다. 그냥 교육 속에 보육이 들어가 있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 이후 학교에는 방역 책임이 더해졌다. 온라인 원격수업이 도입되면서는 교사들에게 이렇다 할 지침 없이 수업 콘텐츠 제작 및 공유는 물론 수업 방식 등이 내맡겨졌다. 학생들의 학습공백이나 교육활동을 어떻게 돌봐야 할지를 고민할 틈도 없이. 전경원 전 소장은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우리 사회가 교사와 학교에 ‘슈퍼맨’이 되기를 요구한 것은 아닌지 돌아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성희 기자 mong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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