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의 번성을 위해' 정성껏 쓴 효의왕후(정조 부인)의 한글글씨…국가지정 보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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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11.18. 오후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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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정조의 부인인 효의왕후 김씨가 필사한 ‘만석군전’과 ‘곽자의전’. |문화재청 제공

중국 한나라 경제 때의 인물 중에 석분(기원전 220~124)이 있다. 벼슬을 하면서도 사람들을 공경하고 예의를 지켰고, 무엇보다 아들 넷이 모두 높은 관직에 올랐던 인물이다. 부귀영화의 상징이며, 당연히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 석분의 일대기로 전해지는 것이 ‘만석군전’이다. 또 당나라 무장 중에 곽자의(697~781)라는 인물이 있다. 안녹산의 난을 진압하고 토번(吐蕃·티베트)을 정벌하는데 공을 세운 장군이다. 곽자의 역시 노년에 많은 자식을 거느리고 부귀영화를 누린 인물의 상징이다. 그의 일대기가 ‘곽자의전’이다.

효의왕후 김씨는 발문에서 “가문의 평안과 융성을 기원하기 위해 필사했다”고 밝혔다. |문화재청 제공

조선조 정조(재위 1776~1800)의 부인인 효의왕후 김씨(1753∼1821)는 조카 김종선(1766~1810)에게 <한서>의 ‘만석군전’과 <신당서>의 ‘곽자의전’을 한글로 번역하도록 했다. 그런 다음 번역된 내용을 정성스럽게 필사하기 시작했다(1794년). 효의왕후는 두 자료를 필사한 이유를 ‘가문의 평안과 융성을 기원하기 위해’라 밝혔다. 효의왕후는 발문에서 ‘충성스럽고 질박하며 도타움은 만석군을 배우고, 근신하고 물러나며 사양함은 곽자의와 같으니, 우리 가문에 대대손손 귀감으로 삼고자 한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이 어필책은 가문의 평안과 융성을 기원한 왕후와 친정식구들의 염원이 담긴 자료라 할 수 있다.

효의왕후 어필과 어필을 담은 오동나무 함.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은 18일 바로 이 효의왕후 김씨의 한글 글씨인 ‘만석군전·곽자의전’과 조선시대 대형불화, 사찰목판 등 5건을 보물로 지정예고했다. 왕후 글씨의 보물지정은 2010년 ‘인목왕후 어필 칠언시’(보물 1627호)이후 두번째이다. 인목왕후(1584~1632)는 선조(1567~1608)의 계비이다.

박수희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연구관은 보물로 지정예고된 효의왕후 한글글씨를 두고 “왕족과 사대부 사이에서 한글 필사가 유행하던 18세기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자료이자 정제되고 수준 높은 글씨체를 보여준다는 점을 평가했다”고 밝혔다. 황정연 연구사는 “왕후가 역사서의 내용을 필사하고 발문을 남긴 사례가 극히 드물고, 당시 왕실 한글 서예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고성 옥천사 영산회 괘불도’. 1808년 18명의 화승들이 참여해 제작한 작품이다.|문화재청 제공

이 자료는 효의왕후가 한글로 쓴 ‘만석군전’과 ‘곽자의전’ 본문, 효의왕후의 발문과 왕후의 사촌오빠 김기후의 발문이 담긴 ‘곤전어필(坤殿御筆)’이란 제목의 책, 그리고 책을 보관한 오동나무 함으로 구성된다. 함에는 ‘전가보장’(傳家寶藏·가문에 전해 소중하게 간직함), ‘자손기영보장’(子孫其永寶藏·자손들이 영원히 소중하게 간직함)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번에 함께 보물로 지정 예고된 경남 ‘고성 옥천사 영산회 괘불도 및 함’은 1808년(순조 8년) 화승 18명이 참여해 제작한, 높이 10m 이상의 대형불화다. 석가여래삼존과 석가의 제자인 아난존자와 가섭존자, 부처 6존이 그려져 있다. 경남 하동 쌍계사 소장 목판 3건은 문화재청이 비지정 사찰 문화재의 가치를 발굴하고 체계적으로 보존관리를 위해 시행하는 ‘전국 사찰 소장 불교문화재 일제조사’를 통해 찾아낸 유물이다.

전국 사찰소장 문화재 조사에서 발굴해낸 경남 하동 쌍계사 소장 목판 3건. 역시 보물로 지정예고됐다.|문화재청 제공

이 중 ‘선원제전집도서 목판’은 지리산 신흥사 판본(1579)과 순천 송광사 판본을 바탕으로 1603년 승려 약 115명이 참여해 총 22판으로 제작됐다. ‘원돈성불론·간화결의론 합각 목판’은 고려 승려 지눌(1158∼1210)이 지은 불경인 ‘원돈성불론’과 ‘간화결의론’을 1604년(선조 37년) 지리산 능인암에서 판각해 쌍계사로 옮긴 목판이다. 총 11판이 모두 갖춰져 있다.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목판’은 1455년에 주조한 금속활자인 을해자(乙亥字)로 간행한 판본을 바탕으로 1611년 능인암에서 판각돼 쌍계사로 옮겨진 불경 목판이다. 총 335판의 완질이 전해지고 있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한 뒤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보물지정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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