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 하마의 무기는 육중한 몸집이 아니라 쩍 벌린 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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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10.13. 오후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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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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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물속 다툼에 큰 덩치 소용없어…턱과 송곳니 커져, 암컷의 2배
하마 수컷 2마리가 입을 크게 벌려 드러난 크고 날카로운 이로 상대를 공격하고 있다. 하마는 일부다처제 포유동물 가운데는 특이하게 암·수의 덩치 차이가 거의 없다. 그램 섀넌 제공.


동물은 일반적으로 수컷보다 새끼를 낳는 암컷이 크다. 그러나 포유류는 반대로 수컷이 크다. 임신과 양육의 부담을 지지 않고 짝짓기에만 몰두하는 수컷끼리의 경쟁이 격화하기 때문이다.

하마는 코끼리와 코뿔소에 이어 육상에서 3번째로 큰 포유류이지만 뜻밖에도 암·수의 덩치는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일부다처제로 자기 영역을 지키느라 다른 수컷과 끊임없이 싸우지만 하마가 내세우는 건 육중한 몸집이 아니라 하품하듯 쩍 벌린 입속의 길이 50㎝에 이르는 날카롭고 거대한 송곳니이다.

수컷 하마의 두개골. 길고 끝이 날카로운 송곳니와 앞으로 삐죽 튀어나온 앞니가 주요 공격 무기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하마 수컷은 어떻게 큰 몸집이 아니라 무기의 크기로 상대와 겨루게 됐을까. 드물게 방대하고 자세한 하마의 측정기록을 이용해 이런 의문을 푼 연구결과가 나왔다.

그램 섀넌 영국 뱅거대 박사 등은 과학저널 ‘바이올로지 레터스’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1960년대의 풍부한 데이터를 분석해 “하마 암·수의 몸무게 차는 불과 5%이지만 턱의 무게는 44%, 송곳니의 무게는 81% 차이가 난다”며 “선택압력이 수컷이 큰 무기를 획득하는 쪽으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하마는 공격적이고 예측불허한 성격 탓에 아프리카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로 꼽힌다. 접근이 어려우니 연구도 힘들다. 디에고 델소,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하마는 대형 포유류 가운데 연구가 가장 덜 이뤄진 동물에 속한다. 낮 동안은 거의 물에 들어가 있는 데다 매우 공격적이고 예측하기 힘든 성격이어서 접근 자체가 어렵다. 하마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일으키는 동물로 보트를 뒤집어 침몰시키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뱅거대 연구자들은 귀한 자료를 얻었다. 타계한 케임브리지대의 저명한 동물학자 리처드 로스 교수의 연구실에서 그가 1961∼1966년 동안 아프리카 우간다의 퀸 엘리자베스 국립공원에서 2994마리의 하마 성체를 상세히 측정한 연구노트를 확보했다. 당시 이 국립공원에는 1만5000마리의 하마가 살았는데 개체수를 조절하기 위해 사살한 개체였다.

리처드 로스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남긴 연구노트. 하마를 상세하게 측정한 드문 기록이다. 그램 섀넌 제공.


연구에 참여한 라인 코드 박사는 “연구노트를 얻자마자 황금 광맥을 찾았음을 바로 알아차렸다. 이 수수께끼 동물에 관한 모든 상세한 측정 수치가 깔끔하게 손으로 적혀 있었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수컷은 암컷보다 약간 무게가 더 나갈 뿐이었다. 1500㎏이 넘는 수컷 성체보다 암컷은 60㎏ 정도 가벼웠다. 어릴 때는 암컷이 오히려 조금 더 컸다. 다른 종에 견주면 암·수의 몸집 차이는 거의 없는 편이었다.

아프리카코끼리 수컷 성체의 무게는 암컷보다 2배까지 무겁다. 포유류 가운데 최대 격차를 보이는 남방코끼리물범은 암컷이 600㎏인데 수컷은 그 6배가 넘는 3700㎏에 이른다.

하마 암·수가 차이를 보인 부위는 턱과 이였다. 수컷 하마는 50∼500m 범위의 영역에서 암컷과 새끼로 이뤄진 5∼30마리 무리를 다른 수컷으로부터 지킨다. 턱을 있는 대로 쩍 벌리고 크고 날카로운 이빨을 과시하고 공격하기도 한다. 수컷의 송곳니 무게는 암컷의 거의 2배로 2㎏에 이른다. 송곳니는 젊은 수컷일수록 빨리 자라 20살에 최대 크기에 이르렀으며 먹이를 씹을 때 쓰는 다른 이는 성별 차이가 없었다.

하마 암·수의 크기 비교. 진한 색이 암컷보다 수컷이 큰 부위를 나타낸다. 턱과 이에서 차이가 두드러진다. 그램 섀넌 외 (2021) ‘바이올로지 레터스’ 제공.


연구자들은 이처럼 수컷이 몸집보다 무기를 키우는 쪽으로 진화한 이유를 물속 생활과 생리적 구조에서 찾았다. 하마는 밤중에 뭍에 올라 먹이를 먹는 것을 제외하고 짝짓기와 출산까지 물에서 한다. 하마는 계통적으로 돼지나 코끼리보다는 고래에 가깝다.

그러나 물속에서는 부력이 작용해 거대한 몸집의 위력이 사라지고 또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결국 우월하다는 표시를 하품으로 내보이는 거대한 턱과 이빨로 대신할 수밖에 없다.

돼지보다는 고래에 가까운 하마는 물속 생활에 적응해 조금 먹고 오래 소화하도록 앞창자에서 발효가 일어나는 소화기관을 지녔다. 이것이 덩치를 키우는 데 한계로 작용한다. 폴 매리츠,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또 다른 이유로 연구자들은 하마의 소화기관이 코끼리나 코뿔소와 달라 뒤창자가 아닌 앞창자에서 발효가 일어난다는 점을 들었다. 하마는 물에 떠 살기 때문에 체중을 지탱하고 몸을 식힐 필요가 없어 에너지 소비량이 다른 동물보다 적다. 따라서 단기간 먹이를 섭취한 뒤 느긋하게 오래 소화하는 신체구조를 갖췄는데 소화속도가 떨어져서 체중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 암컷 하마가 새끼를 보호하고 서식지를 확보하기 위해 몸집을 키우는 쪽으로 진화한 것도 암·수의 체격 차를 줄이는 효과를 냈다고 연구자들은 설명했다.

주 저자인 섀넌 박사는 “이번 연구는 성별에 따른 크기 차이의 진화가 단지 수컷 사이의 심한 경쟁에 의해서뿐 아니라 그 종 특유의 먹이, 생리, 환경 요인에 의해서도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하마는 서식지 감소와 고기와 송곳니를 노리는 밀렵 때문에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취약종으로 지정됐다.

인용 논문: Biology Letters, DOI: 10.1098/rsbl.2021.0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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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로서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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