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초파리에게 간헐적 단식을 시켜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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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국제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는 1971년 9월 생명과학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논문이 실렸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 생물학부의 시모어 벤저 교수와 대학원생 로널드 코놉카는 생체시계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나 하루 24시간 주기 리듬을 잃어버린 초파리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연구자들은 변이가 일어난 유전자에 주기의 영어인 피리어드('period'를 줄여서 per)라는 이름을 붙였다.

당시 생체시계를 연구하던 사람들은 동식물의 24시간 주기처럼 복잡한 행동에는 유전자 수백 개가 관여할 것이라 믿고 있었기 때문에 유전자 하나만 고장나도 일주기 리듬이 무너진다는 발견은 충격이었다.

1990년대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초파리의 per 유전자에 해당하는 생체시계 유전자가 생쥐와 사람에서도 발견된 것이다. 생쥐와 사람에서는 per 유전자가 세 개로 늘어나 각각 per1, per2, per3로 불린다. 곤충(선구동물)과 포유류(후구동물)가 공통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게 약 6억 년 전으로 추정되므로 지구 자전에 맞춰 진화한 일주기 리듬이 얼마나 본질적인 기능인가를 보여주는 증거다. 실제 per2 유전자에 특정 변이가 있는 사람은 22시간 주기 리듬을 지녀 평생 시차를 느끼며 피곤하게 살아야 한다.

per 이외에도 클럭(clock), 사이클(cycle), 타임리스(timeless) 같은 생체시계의 핵심을 이루는 유전자들이 발견됐고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일주기 리듬이 발생하는 메커니즘도 밝혀졌다. 생체시계 회로 역시 포유류가 좀 더 복잡할 뿐 기본 구조는 곤충과 같다.

○ Per 변이체는 효과 못 봐
1971년 9월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에는 생체시계 유전자 변이로 일주기 리듬을 잃어버린 노랑초파리(학명 Drosophila melanogaster)를 보고한 논문이 실렸다. 이를 계기로 생체시계 유전학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지난 2017년 이 분야 연구자들이 노벨상을 받았다..PNAS 제공
학술지 ‘네이처’ 10월 14일자에는 현대 생체시계 연구의 출발점이 된 논문 출간 50주년을 기념하는 듯한 논문이 실렸다. 초파리에게 간헐적 단식을 시키자 수명이 늘어났는데 알아보니 생체시계가 관여한 자가포식이 활발하게 일어난 덕분이라는 내용이다. 자가포식(autophagy)이란 먹이 섭취가 부족할 때 세포에서 생체분자를 분해해 재활용하는 과정이다. 이때 세포에 쌓여있던 불필요하거나 변형된 분자가 청소된다.

간헐적 단식은 짧은 시간(보통 하루를 넘지 않는다) 금식 또는 절식을 일정한 주기로 반복하는 방법이다. 일주일에 5일은 평소대로 먹고 2일(예를 들어 월목)은 굶거나 가볍게 한 끼만 먹는 ‘5:2 다이어트’나 하루 24시간에서 8시간 동안만 음식을 먹고 나머지 16시간은 안 먹는 ‘8시간 다이어트’가 대표적인 예들이다.

간헐적 단식은 살을 빼는 효과적인 방법일 뿐만 아니라 대사질환에 걸릴 위험성을 낮추고 몸의 노화를 늦춰 수명을 늘리는 효과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런 효과를 내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은 잘 모르는 상태다.

미국 컬럼비아대 미미 시라주-히자 교수팀은 초파리에게 다양한 일정의 간헐적 단식을 실시해 수명연장 효과가 가장 큰 조건을 찾았다. 12시간은 불을 켜고 12시간은 불을 꺼 하루 24시간을 재현한 환경에서 이틀(48시간) 주기로 섭식 시간대를 조절하자 수명이 암컷은 18%, 수컷은 13% 이상 늘었다.

이를 오전 6시에 해가 떠서 오후 6시에 지는 자연의 시간대로 보면 이렇다. 첫날 정오부터 이튿날 오전 8시까지 20시간 동안 굶는다. 8시부터 이튿날 정오까지 28시간 동안 먹이를 먹을 수 있다. 이처럼 20시간은 굶고 28시간은 원하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48시간 주기가 반복된다.

그런데 이 결과 오래 사는 건 칼로리 제한의 효과가 아닐까. 48시간에서 20시간은 먹이를 먹을 수 없으니 전체 섭취량도 줄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 조사해보니 간헐적 단식을 한 초파리가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초파리에 비해 오히려 섭취량이 약간 더 많았다. 20시간 굶은 뒤 허기로 식욕이 왕성해졌다는 말이다. 간헐적 단식의 수명연장 효과는 덜 먹어서가 아니라 섭취 타이밍의 결과다. 그렇다면 생체시계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체시계의 핵심인 per 유전자의 발현 패턴 역시 일주기 리듬을 보이는데 간헐적 단식을 한 초파리에서 진폭이 더 커졌다. 낮과 밤의 생리 기능 차이가 더 뚜렷해졌음을 시사하는 변화다. 흥미롭게도 per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생체시계가 고장난 초파리는 간헐적 단식을 해도 수명이 늘어나지 않았다. 이처럼 간헐적 단식의 효과가 생체시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면 시간대가 중요한 게 아닐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연구자들은 48시간 주기 시간대를 12시간 당겨 20시간 굶는 시간대의 중심에 낮이 오게 했다. 첫날 자정부터 저녁 8시까지 20시간 동안 굶는다. 저녁 8시부터 이튿날 자정까지 28시간 동안 먹이를 먹을 수 있다. 그 결과 놀랍게도 간헐적 단식의 수명연장 효과가 사라졌다. 굶는 20시간의 중심에 밤이 놓여야 한다는 말이다.
초파리 생체시계 회로의 전모는 2000년대 들어서야 밝혀졌다. PER 단백질은 회로의 핵심으로 밤에 만들어지고 낮에 파괴되며 일주기 리듬을 생성한다. 노벨재단 제공

○ 자가포식은 밤의 후반부에 가장 활발
앞서 언급했듯이 20시간 정도 굶으면 세포에서 자가포식이 일어난다. 그런데 굶는 시간대에 따라 수명연장 효과가 있거나 없다는 건 자가포식의 효율이 다르기 때문 아닐까. 간헐적 단식 패턴은 생체시계에 영향을 미치고 생체시계는 자가포식 과정에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실제 자가포식에 관여하는 atg1과 atg8a 유전자의 발현은 밤에 높고 20시간 굶는 시간대의 중심에 밤이 있는 간헐적 단식을 할 때 증폭됐다. 그 결과 자가포식이 활발하게 일어났다는 말이다. per 유전자 돌연변이체에서는 간헐적 단식을 해도 atg1과 atg8a 유전자의 발현이 증폭되지 않았고 그 결과 수명연장 효과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초파리 실험의 결과가 사람에서도 재현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시사하는 바는 있다. 중심에 밤이 있는 20시간(정오에서 이튿날 8시) 굶는 48시간 주기를 일상에 적용하려면 격일로 저녁을 먹지 않는 간헐적 단식을 하면 될 것이다. 그래도 아침 점심 두 끼는 먹으니 일주일에 2일은 가벼운 한 끼만 먹는 5:2 다이어트보다 실천하기 쉬워 보인다.

정오에서 이튿날 오전 8시까지 20시간 굶고(20h fast) 그 뒤 28시간은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28h feed) 48시간 주기의 간헐적 단식(iTRF)을 하면 생체시계 유전자인 per와 tim의 발현 주기 진폭이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조건(ad lib. 점선)에 비해 커지면서(실선) 자가포식 단백질(autophagy proteins)의 발현 주기 진폭도 커진다. 그 결과 밤에 자가포식이 더 활발하게 일어나 건강증진과 수명연장 효과가 나타난다. 네이처 제공
많은 사람들이 실천하고 있거나 선호하는 방식인 점심과 저녁 두 끼를 먹는 것은 어떨까. 이에 해당하는 초파리 실험(오후 6시에서 이튿날 오후 2시까지 금식)은 없지만 아침 점심 두 끼보다는 효과가 작을 것임을 예상하게 하는 결과는 있다.

수명연장 효과가 가장 큰 일정을 찾는 실험에서 실시한 여러 조건 가운데 하나인 낮 12시간(오전 6시에서 오후 6시)은 마음대로 먹을 수 있고 밤 12시간은 먹을 수 없는 하루 주기 간헐적 단식에서는 초파리의 수명연장 효과가 없었다.

그런데 시간대를 3시간 당겨 오전 3시부터 오후 3시까지 먹을 수 있고 오후 3시부터 다음날 오전 3시까지 굶는 하루 주기 간헐적 단식을 하게 하자 수명이 늘어났다. 자가포식 관련 유전자의 발현량은 밤의 후반부가 정점이므로 그 전에 공복 기간이 길수록 자가포식이 더 효과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같은 하루 두 끼라도 점심 저녁보다 아침 점심이 낫다는 말이다.

한편 고치에서 성충이 나온 지 10일에서 40일 사이에 이틀 주기 간헐적 단식을 할 때 수명연장 효과가 가장 컸다. 사람으로 치면 청년에서 중년 사이다. 40일이 넘어서도 간헐적 단식을 지속하면 수명연장 효과가 사라졌다. 사람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노년에는 무리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대신 하루 세 끼를 먹되 간격을 약간 좁힌 ‘10시간 다이어트’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후 5시쯤 일찌감치 저녁을 끝내고 이튿날 아침 7시까지 14시간 금식을 하는 하루 주기 간헐적 단식법이다.

10시간 다이어트는 물론 8시간 다이어트를 해도 저녁(최종 식사) 시간이 늦어질수록 자가포식 활동으로 인한 건강증진 또는 수명연장 효과는 점차 줄어들다 어느 선을 넘으면 사라질 것이다. 우리 몸의 생체시계에 따르면 그렇다는 말이다.

1971년 생체시계 돌연변이 초파리를 발견한 벤저와 코놉카는 염색체에서 per 유전자가 있는 위치를 알아내는 데서 그쳤다. per 유전자의 실체(염기서열)는 1980년대 다른 연구자 세 사람이 밝혔고 이 업적으로 이들은 2017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벤저와 코놉카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per 유전자의 존재가 알려지고 50년이 지났음에도 생체시계 회로의 핵심으로 자가포식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 걸 보면서 인생은 짧고 ‘과학’은 길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자가포식이 일어나는 과정으로 먼저 atg1과 atg8a가 막에 달라붙어 분해할 단백질(Ub protein)을 감싸는 구조(autophagosome)를 만든다. 그 뒤 소화효소를 담고 있는 리소좀과 융합해(lysosome fusion) 안의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분해돼 재활용된다. atg1과 atg8a 유전자 발현 패턴은 밤에 높은 일주기 리듬을 보이는데, 타이밍이 적절한 간헐적 단식을 하면 진폭이 더 커져 자가포식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네이처 제공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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