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속상한 말은 “연세가 어떻게?”…청소·경비일도 감지덕지” [내막노:내 마지막 노동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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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12.08. 오전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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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늙은 게 죄인가요[경향신문]

지난 3일 서울의 한 노인취업지원센터에 어르신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권도현 기자


코로나로 일자리 경쟁 더 치열해져
요양보호사 일은 40대까지 내려와
업체가 노인은 원하지 않기 때문

배관공, 양복점·음식점·봉제공장·슈퍼마켓·고물상 운영, 가구산업 종사, 농업, 건설현장 형틀공, 파출부, 용접공, 도청 공무원, 의류 업체 회사원.

경기도의 한 노인취업지원센터에서 지난 10월 취업을 알선한 노인 33명이 젊은 시절 10년 이상 했던 일들이다.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열심히 일했지만, 노인이 돼 일자리를 구하려면 이 같은 경력은 소용이 없다. 도시에서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청소나 경비 같은 단순노무직으로 제한돼 있다. 기업들이 노인 노동자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33명 중 20명은 청소, 12명은 경비, 1명은 주차관리로 취직했다. 평균 월급은 165만원, 나이가 많을수록 급여가 적었다. 일하고 싶은 노인은 많고, 노인을 받아줄 기업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노인들은 취업을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다. 능력·경력보다 나이가 우선시되는 채용시장에서 노인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을 받아들이며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자조의 말을 내뱉었다. 그사이 ‘노인의 노동, 일자리는 어때야 하나’라는 고민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 능력·경력보다는 나이부터 묻는다

조그마한 개인사업을 20년간 했던 장현미씨(63·가명)는 50대에 일자리를 구하러 구청 일자리창출과에 방문했다가 ‘아무 경력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크게 성공하지는 못해도 독자적인 사업을 벌인 경험으로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청소밖에 할 게 없다는 안내를 받았다. 6개월만 해보라는 구청 직원의 권유에 시작한 청소 일을 10년째 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지난해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노인의 절반가량(48.7%)이 단순노무직에 종사한다.

노인 취업에서는 나이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취업하려면 어딜 가든 나이부터 묻는다”고 노인들은 공통적으로 말했다. 노인에게도 ‘생산성’을 요구하는 분위기 속에서 기업이 나이 많은 노동자를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다. 어떤 능력이나 기술이 있든지 간에 한 살이라도 어려야 취업이 잘된다. 일자리를 구하러 노인취업지원센터나 복지관 등을 방문하는 노인들은 이러한 현실을 처음엔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한다.

한 노인 일자리 담당자는 “좋은 기술이 있어도 그것을 펴지 못하고 몇 달을 놀다가 결국 아무 데나 보내달라고 다시 온다”며 “대졸 학력을 갖고 있어도 고시원에 살면서 경비 일을 하는 노인도 있다”고 했다. 다른 노인 일자리 담당자도 “처음 일자리를 구하는 노인들은 왕년의 멋진 경력을 이야기하지만 현실을 알고 눈높이가 낮아진다”며 “청소와 경비같이 한정된 단순노무직이 많다보니 ‘이 나이 됐을 때 할 수 있는 게 진짜 없구나’라며 속상해하는 노인들이 많다”고 했다. 일을 빠르고 정확하게 하지 못하는 노인에 대한 질책과 추궁은 고객들의 불평과도 연결돼있다. 노인들은 취업을 위해 고학력을 숨기고, 한 살이라도 나이를 줄이기 위해 혹 생년이 실제보다 빠르게 기재된 경우에는 주민등록까지 바꾸려고 한다.

코로나19 이후 경제위기와 실업이 이어지면서 노인들의 일자리 경쟁은 더 심해졌다. 청소·경비는 물론 요양보호사 분야에 새로 진입하는 노동자들의 나이가 40대까지 내려왔다. 1년 계약직으로 요양보호사 일을 하는 신숙희씨(61·가명)가 말했다. “누구든지 일하고 싶어서 난리죠, 난리. 공무원을 퇴직하고 요양보호사를 하는 사람도 여럿이고, 40대 초반도 있어요. 아무래도 채용하는 업체 입장에서는 젊은 사람을 뽑고 싶을 것 같은데, 제가 나이가 많아서 (다음 계약 갱신에서는) 떨어질 수 있을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간병 쪽은 중국동포 노동자들이 늘었다. 최신 아파트단지나 주상복합건물은 경비를 시스템화하고 젊은 인력이 많은 경비업체에 시설 관리를 맡기는 추세다. 스마트폰이나 단말기로 주소를 입력하거나 지도를 보지 못하면 택배 일도 하기 어려운 디지털 시대에 노인들은 설자리를 점차 잃고 있다.



산재 사고 기업 책임 강화된 이후
건강검진 요구하며 일감 안 주거나
결과에 따라 계약 해지 통보받기도

■ 건강을 증명하라…“현대판 고려장”

경기도의 한 학교에서 숙직을 하는 조강원씨(78·가명)는 고독이 제일 힘들다고 했다. 조씨는 오후 4시반쯤 출근하고, 다음날 오전 8시반쯤 퇴근한다. 매일 16시간을 학교에 있는다. 교사와 학생들이 모두 빠져나가 고요한 밤 시간대, 조씨는 복도를 다니며 불을 끄고 문단속을 한다. 5평 남짓한 숙직실에 TV 소리만 크게 울리고, 잠을 청하지만 잠이 오지 않을 때 조씨는 자신의 일이 ‘등대지기’ 같다고 생각한다. 가끔 외부인이 학교에 무단으로 들어오면 대응하기도 한다.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그래도 큰 문제없이 해온 일이었다. 이렇게 일하고 받는 한 달 급여는 140만원가량이다.

서울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회사에 다녔지만 보증을 잘못 섰다가 생활이 어려워졌다. 공장에서 경비를 하다가 넘어온 게 학교 숙직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조씨는 특수운영직군으로 분류됐다. 학교에선 정부 방침에 따라 체력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노인들은 일하면서 건강함을 증명해야 한다. 학교에서 5년 넘게 일한 그는 지난해 근로계약 해지 통보서를 받았다. 체력 인증 중 유연성 항목에서 3등급 이하 점수를 받았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체력 인증은 저를 자르고 싶어서 하는 거라고 봐요. 나이 많은 사람이 유연할 수가 없잖아요. 숙직이 중노동도 아니고, 모두가 체력 측정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유연성이 이 업무랑 무슨 관련이 있냐고요.”

여차저차해 일단 계약이 연장됐지만, 내년 재계약 시점이 다시 돌아온다. 조씨는 이번엔 포기할 생각도 한다고 했다. “여기는 현대판 고려장이죠. 실은 죽는 사람도 있대요. 예전에는 연휴 때도 계속 근무했거든요. 황금연휴 4, 5일간 꼬박 학교를 지켜야 하는데, 나중에 와보면 죽어있는 경우도 있다고요. (…) 노인의 노동은 불가피해요. 100세 시대이니까요. 기계가 가만히 있으면 녹이 슬듯이 사람도 활동을 하지 않으면 병이 생겨요. 젊었을 때 저축을 많이 하고 성공했으면 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죠. 한 번 망하면 그 뒤로는 계속 빈곤이에요. 패자부활전이라는 게 우리나라에서는 힘들잖아요.”

노인 노동자의 건강 문제는 산업재해와도 연관된다. 내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산재 사고에 대한 기업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바뀌면서 최근 건설업계에서는 노인에게 일거리를 주지 않거나, 건강검진을 요구하는 기업들이 나타나고 있다. 기업의 안전 강화와는 별개로 노동자에게 ‘건강 증명’을 요구하는 것이다.

올해 초까지 건설 현장에서 일한 최환승씨(71·가명)의 말이다. “나이 먹었다고 사고가 나는 게 아니라, 현장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는 미숙한 사람들이 사고를 당하는 거예요. 20년 이상 일해온 사람들은 꼭 나이가 문제되는 건 아닌 거죠. 그런데 60세가 되면 회사에서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하고 작업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소견서를 받아오라고 해요. 사고가 났을 때는 본인이 책임진다는 것을 확인하려고 요구하는 거예요. 책임 회피인데, 우리는 힘이 없으니까 회사에서 내라고 하면 내야죠.” 고용노동부의 산재 사고 사망 통계를 보면, 지난해 산재 사고로 숨진 노동자 10명 중 4명은 60세 이상이다.

일자리 수요 넘치는데 공급은 한정
열악한 노동환경에도 체념할 뿐
“자격증 따면 뭐하나…나이가 볼모”
점점 취업시장서 소외되는 노인들

■ 열악한 노동환경, 내면화한 노인들

노인들은 취업 좌절과 해고, 열악한 노동환경이 불만이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체념적 태도를 보였다. “이 나이에 누가 써주겠느냐. 일자리가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많이 겪어봐서 익숙하다”는 말들이 나왔다. 결혼 후 자녀 양육에 전념했던 이순녀씨(64·가명)는 나이 들어 구직을 하면서 한식 요리와 바리스타 자격증 공부도 시도했지만 요양보호사로 자리를 잡았다. “배우면 뭘 하냐고요. 우리를 쓸 곳이 없는데. 제가 배워봤지만 나이 60이 넘은 여자를 바리스타로 써줄 커피집이 어디 있을 것이며, 또 한식 자격증을 겨우 딴다고 해도 음식점에서 나를 조리사로 채용할까요? 그렇다보니 요양보호사를 선택한 거죠.” 엄마로서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있으니 그나마 요양보호사가 낫겠다고 생각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이씨는 “나이가 볼모”라는 표현을 썼다.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일은 쉽지 않다. 몸무게가 80㎏나 되는 치매 노인을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기고, 기저귀를 갈면 금세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아프다. 최근엔 사정이 나아졌지만 한때는 노동과 휴식의 분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이씨는 말했다. 밤에도 치매 노인이 기침을 하거나 소리가 나면 가볼 수밖에 없는 식이다. 관리자가 자신보다 나이 많은 노인 노동자에게 막말을 하는 등 인권침해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 나이에 어디 가서 이 돈을 버느냐’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했다.

성긴 복지망은 일자리 부족과 얽혀 노인들이 빈곤한 상태에서 전전하게 만든다. 시민단체들은 최근 기초생활수급 노인이 기초연금을 받으면 연금 수령액을 소득으로 인정하는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생계급여에서 소득 인정 부분을 삭감해 기초생활수급 노인은 사실상 기초연금 혜택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기초연금이 오를 때마다 기초생활수급 노인의 소득은 제자리이거나 상대적으로 더 떨어진다는 것이다. 기초생활수급 노인이 정부 일자리 사업인 공공근로에 참여하면 공공근로 급여도 소득으로 인정돼 마찬가지 상황이 발생한다.

스스로를 ‘빈곤층’이라고 지칭한 박철수씨(66·가명)가 그런 사례다. 박씨는 오랫동안 택시운전 기사를 하다가 나중엔 건설공사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을 했다. 일용직 일은 주로 야간 노동으로 했다. 그게 일당이 더 많기 때문이다. 택시운전을 하면서 페달을 자주 밟은 탓인지 박씨는 목과 허리 디스크를 앓았다. 일을 그만두고 한동안 쉴 수밖에 없었다. 자산도, 소득도 없어 기초생활수급자로 정부 지원을 받았다.

그런 박씨는 지난해엔 공공근로를 하기 위해 기초생활수급을 포기했다. 1년여간 공공근로를 했고, 이후 실업급여를 받았다.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에는 구직 활동을 한 근거 자료를 노동청에 내야 한다. 박씨는 취업정보 사이트인 워크넷에서 청소 일자리를 찾았다. 십여 군데 업체에 전화를 넣고 직접 가보기도 했지만 구직엔 실패했다. “구인 공고에는 성별이 쓰여있지 않은데 (업체에) 가보면 여자들만 구한다는 거예요. 실제로 찾아간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예요. 헛수고하는 거죠. 청소하는 것은 똑같은데, 제가 (돈을) 더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요. 어쩔 수 없이 공공근로를 1년 더 하고 그다음에 경비나 다른 쪽으로 폭을 넓혀서 찾아보려고요.” 그는 향후 10년은 더 일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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