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정말 잃기만 한 시간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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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상황을 재평가해본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똑같은 절망적인 사진을 봐도 부정적 정서가 덜 한 것으로 나타났다. 픽사베이 제공
끝이 보이지 않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지쳐가고 있다. 지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마음을 토닥일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흔히 사람들이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냥 꾹 참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감정을 ‘재평가’해보는 것이다. “나는 지금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되뇌이며 감정을 억누르는 것은 에너지만 많이 들고 별로 효과가 없다는 점에서 추천하기 어려운 방법이다. 다행히도 감정을 재평가해보는 것, 즉 감정을 일으킨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 나만의 새로운 해석을 부여해보는 방법은 억누르기보다 힘도 덜 들면서 효과도 훨씬 좋다.

미국 하버드대 왕커 연구원과 동료들은 87개국 약 2만명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연구자들은 사람들에게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서 뉴스에 흔히 나오는 중환자실과 장례식장 사진 등을 보여주고 지금 기분이 어떤지, 코로나19 상황에 대해 얼마나 희망적 또는 절망적으로 느끼는지에 대해 물었다.

사진을 보여주기 전에 한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현 상황에 대해 ‘재평가’해보도록 했다. 예컨대 팬데믹 자체는 내 힘으로 통제할 수 없지만 적어도 감염에 있어서는 마스크 착용, 손 씻기, 예방 접종 등으로 충분히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거나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작은 친절을 베풀어서 웃음을 전할 수는 있다는 생각을 해보도록 했다.

현재의 절망적인 상황과 자신의 무력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 것에 더해, 현 상황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면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했다. 즉 아무것도 건질 것이 없는 것 같은 상황에서 새로운 쓸모를 발견해보도록 했다. 예컨대 과거 인류가 질병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던 것처럼, 이번 팬데믹을 통해서 미래의 비슷한 일에 대해 더 잘 대처하게 될 것이라든가 이번 기회를 통해 혼자 할 수 있는 취미를 여러가지 발굴할 수 있었다든가 등이 있겠다.

그 결과 간단하게 현 상황을 재평가해본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똑같은 절망적인 사진을 봐도 부정적 정서가 덜 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현 상황에 대한 절망감 또한 훨씬 덜 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력감이 가득 차 있는 상황에서도 작게나마 할 수 있는 일을 한 두가지 찾는 것만으로 절망과 싸울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고서부터 2년여간을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 하다.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확 줄어든만큼 내 삶을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정말 잃기만 한 시간이었는지 다시금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변함없이 따듯한 관심을 보내주는 사람들의 소중함과 자신도 힘들면서 여전히 타인에게 다정하고 친절할 수 있는 사람들의 강인함을 깨달은 것, 반려 식물을 들인 것, 오래 전에 관뒀던 피아노를 다시 시작한 것, 힘든 시간들을 이 정도나마 버텨온 내가 참 대단하다는 것, 마스크가 제 2의 피부처럼 느껴지는 것은 내가 그간 나 자신과 다른 많은 사람을 위험으로부터 지켜왔다는 증거라는 것과 같은 생각들이 예가 될 수 있다. 스쳐지나가게 내버려두면 사라지지만 기억에 꼭꼭 새겨두면 뿌듯함이 될 기억들을 하나 둘 발견해보자. 조각조각 찾아서 마음 속 서랍에 넣어두고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무력감이 이따금씩 찾아올 때면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는 근거로 써먹도록 하자.

※참고자료
-Wang, K., Goldenberg, A., Dorison, C. A., Miller, J. K., Uusberg, A., Lerner, J. S., ... & Isager, P. M. (2021). A multi-country test of brief reappraisal interventions on emotions during the COVID-19 pandemic. Nature Human Behaviour, 1-22.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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