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말은 그렇게 해도 다시 오는 사람은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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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요양병원 어르신들... 기약 없는 약속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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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어르신을 내일 다시 볼 수?없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 바로 요양병원이다.
ⓒ pixabay

지난해 가을, 요양병원에서 면회 지원을 한 적이 있다. 요즘은 코로나 시국이라 면회 온 보호자의 온도 체크, 백신 접종서를 확인하고 방문 기록을 작성하게 한 후 대기실에서 기다리게 한다. 면회에 음식을 잔뜩 들고 온 보호자도 있고 빈손으로 온 보호자도 있다. 음식을 잔뜩 들고 온 보호자는 아마도 환자를 돌보는 직원들을 위해 들고온 것이리라.  

휠체어에 탄 환자가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반대쪽 실내에 도착하면, 보호자들은 유리문을 통해 환자와 서로 대화를 나눈다. 필요할 때는 병원에서 제공하는 휴대전화를 사용하기도 한다. 통 큰 유리문을 가운데 두고 서로 '사랑해' 같은 말들을 수없이 반복하며 십여 분을 채운다. 유리창 밖에 서 있는 가족들을 아무 감정 없이 멍하니 바라보는 환자도 있고, 그저 좋아서 아이처럼 손을 흔드는 환자도 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환자는 주로 면회 온 보호자가 울고, 정신이 온전한 환자는 반대로 환자가 눈물을 흘린다. 면회 온 자식이 하트를 그리며 연신 인사하고 감정이 뒤섞인 표정으로 뒷걸음질로 가다 어렵게 발길을 돌리면 남겨진 환자는 눈물을 훔치며 "이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니야"라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니야'  
 
2014년 요양병원에서 간호 조무사로 실습을 할 때 그런 말씀을 하신 어르신이 계셨다. 자식으로 보이는 남자가 찾아와 서류를 내밀자 어르신은 안경을 써서 서류를 읽더니 말없이 도장을 찍어 주었다. 

그 남자는 서류를 챙겨 바로 가버렸고 어르신은 돌아 앉아 울었다. "장남! 젊었을 때 내가 내 손으로 돈 벌어 지은 내 집인데 그거 팔겠다는 서류야. 이젠 정말 돌아갈 데가 없어!" 애써 눈물을 훔쳐내는 어르신 모습이 여전히 잊히지 않는다. 

다시 돌아갈 데가 없다는 슬픔. 죽음을 마주하며 삶의 종착역에 다다른 사람들이 다음 역을 기다리며 대기하는 곳, 요양병원. 저 어르신을 내일 다시 볼 수 없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 바로 요양병원이다.
 
3층엔 일상생활이 가능한 환자들이 있고 4층엔 중간 단계의 환자들이 있고 5층엔 중증 환자들이 있다. 각각의 층에 따로 누워있는 부부도 있다. 그나마 형편이 괜찮은 부부는 한방을 쓰기도 한다. 

3층에 계신 한 환자는 다른 환자들의 심부름을 도맡아 하셨다. 갈 곳이 없어 요양병원에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좁은 병실에 외출복을 비롯한 살림살이가 잔뜩 널려있었다. 당뇨임에도 커피를 줄곧 마시는 환자도 있고, 젊었을 때 잘 나갔다고 허풍 떠는 환자도 있고, 60 넘은 노총각 환자도 있고, 데스크에 와서 자식들이 걱정한다며 빨리 집에 보내달라는 환자도 있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어르신 한 분이 계셨다. 조씨(가명)였다. 조씨는 다른 환자와 달리 건강해 보였다. 외모도 출중하고 매너도 좋아 여성 환자들한테 인기가 많았다. 당장 밖에서 생활을 해도 괜찮을 정도로 좋아 보였다. 대화도 잘 하시고 소통에도 문제가 없어 실습생들에게 잘 해주는 환자였다. 실습을 하는 몇 달 동안은 계속 환자들을 보기 때문에 많이 친해질수 밖에 없다.

친해지다 보니 조씨는 재밌는 얘기를 들려주셨다. 우체국 공무원이셨고 정년퇴직을 했고 아무개라는 여성 환자에게 '밖에서 살림을 차리자'고 고백을 했는데 그녀가 거절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길로 아무개 환자에게 가서 그 사실을 물었다.

오지도 않는 딸과 여행가기로 했다면서 그날만 기다리는 그녀는 "밥 하고 빨래하기가 싫어서" 거절했다고 했다. 밥하고 빨래가 그들의 애정을 막은 셈이다. 나름 설득했지만 그녀는 완고했다. 평생 남의 첩으로 살았던 그녀는 조씨를 좋아했지만 살림은 싫다고 했다.

낙엽이 떨어지고 실습 기간이 끝나갈즈음 겨울이 되었다. 실습 마지막 날 환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놀러들 와" "아, 네 그럼요 놀러 올게요. 놀러 오고 말고요, 어르신 보러 꼭 다시 올게요." 실습 동료들은 그렇게 다음을 약속하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다들 말은 그렇게 해도 다시 오는 사람은 없더라."

조씨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남들 다 하는 "다시 올게요"라는 인사말을 선뜻 꺼내지 못했다. 다른 동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형식적인 인사를 나누는 동안에도 나는 계속 그 말을 할까 말까 망설였다. 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건 약속을 하는 건데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나를 데리러 오고, 나를 만나러 온다는 희망,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아서 차마 다시 오겠다는 빈말을 함부로 던질 수가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형식적인 인사라는 걸 알지만, 그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빈말을 잘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신중해야 했다. 

조씨의 그런 말에도 동료들은 '다음에 다시 꼭 올게요'라는 말을 계속했다. 정말 꼭 다시 올 것처럼 손까지 잡으며 살갑게 웃으며 얘기했다. 그러자 조씨의 표정이 밝아졌다. 고민하는 나 자신이 우습기도 해 나도 그만 "다음에 다시 한번 꼭 올게요"라고 인사를 해버렸다. 조씨는 나를 포함 몇몇 실습생들에게 손수건과 박하사탕을 선물해 주었다.

너무 늦으면 '다음'이 없을지도 모른다 

학원으로 돌아온 그 해, 시간은 흘러 12월도 5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바로 연말이었다. 기다리고 있을 조씨가 계속 마음이 쓰였다. 연말을 넘기면 정말 다시 가볼 수 없을 거 같았다. 동료들은 하나 같이 안 간다고 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눈처럼 녹아버릴 약속들을 한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나 혼자 가기로 했다. 약속은 약속이었다. 나는 시장에서 먹을 걸 사들고 요양병원으로 향했다. 기다리고 있을 조씨를 생각하며, 아무개 여성 환자의 환한 미소를 생각하며, 나를 반겨줄 외로운 환자들을 생각하며 미끄러운 눈길을 걸어갔다.

병원 안은 모든 게 낯설었다. 실습생들이 빠져나간 겨울 병원엔 싸늘한 적막감이 흘렀다. 불과 한 달 조금 넘었을 뿐인데 을씨년스럽게 삭막했다. 호실을 기웃거렸지만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겨우 조씨를 찾았다. 건강했던 모습과 달리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를 알아본 건지 못 알아본 건지 하염없이 웃고만 있었다. 가져간 음식도 먹지 못할 만큼 기력이 쇠해 보였다.

하루하루 급하게 다가오는 죽음을 놓치고 있었다. 진작 와봤어야 했는지 모른다. 말없이 웃고만 있는 조씨 옆에서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기만 했다. '제가 누군지 아세요? 기다리실 거 같아서 왔어요 약속 지키려고요.' 많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서 있다가 그냥 돌아서 나왔다. 그해 겨울을 쓸쓸했다.    

면회 지원 대기실에서 다음 환자를 기다리는 동안 면회자에게 얼마만에 온거냐고 물었다. 작년에 오고 못 왔다고 했다. 환자가 모습을 보이자 면회자는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면회자는 유리문을 통해 십여 분을 얘기하다 "다음에 다시 올게요"라고 말하며 가버렸다. 보는 사람도 쓸쓸한 시간이다. 언제나 그렇듯 너무 늦으면 다음이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 삶이 그렇듯 다음을 장담할 수 없는 게 인생이다.  

올겨울은 유난히 따뜻하다. 춥지 않은 겨울이 될 것이라 예상한다.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하는 삶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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