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예의 바르고 아무도 다치지 않는 위반,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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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러스하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픽사베이 제공
마음이 울적할 때면 인터넷에서 귀엽거나 재미있다고 하는 영상이나 스탠드업 코미디를 찾아보곤 한다. 한바탕 웃고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일 하다가 지루할 때에도 웃음을 유발하는 뭔가를 보고 나면 다시 정신차릴 힘이 나곤 한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 우리가 웃기다거나 유머러스하다고 하는 자극들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스트레스의 악영향을 치유하는 듯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의 바바라 프레드릭슨 교수는 이들을 ‘스트레스 지우개’라고 부른다. 다년간 이루어진 회복탄력성 연구들에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다양한 삶의 위기를 더 잘 헤쳐나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의외로 사람들이 어떤 자극들을 재미있고 웃기다고 여기는지, 즉 웃음을 유발하는 결정적인 요소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직 알려지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 미국 애리조나대의 심리학자 칼렙 워렌 교수와 동료들은 최근 기존의 연구들을 종합하여 유머를 구성하는 요소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았고 다음의 다섯 가지가 자주 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① 놀람(surprise): 예상치 못한 무언가를 맞닥트림
② 우월성(superiority):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더 잘났다거나 상대적으로 더 좋은 위치에 있다고 느낌
③ 위반(violation): 상식 또는 규칙에서 어긋나거나 위협적이거나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음
④ 온건함(benign): 실질적인 위협이나 위험을 동반하지 않음. 감당할만 함.
⑤ 동시성(simultaneity): 서로 상반되는 해석, 개념, 믿음들이 함께 나타남

하지만 워렌 교수는 '놀람’과 ‘우월성’의 경우 유머를 성립시키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라고 보았다. 놀라운 것이 항상 웃기는 것은 아니고 하나도 놀랍지 않지만 항상 웃기는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똑같이 깜짝 놀란다고 해도 친구나 가족이 간지럽히면 (잠깐 동안은) 재미있지만 낯선 사람이 간지럽히면 유쾌한 놀라움보다는 불쾌한 놀라움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또한 ‘유행어’나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게 되는 웃긴 영상 등 이미 알고 있지만 볼 때마다 또 재미있는 것들이 존재한다.

대화할 때 완전히 예측 불가능한 종류의 농담보다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농담이 더 사람들을 크게 웃긴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농담이나 유머도 어느 정도 ‘해석’이 가능해야 웃을 수 있기 때문에 예상 범위를 벗어나도 너무 벗어나면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 과정이 너무 복잡해서 머리를 굴리는 사이 재미가 다 달아나는 일도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비슷하게 ‘우월성’ 또한 유머가 유머러스하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는 아니라고 한다. 놀리는 것도 재미있을 수 있지만 반대로 어느 정도 놀림을 당하는 것도 재미있을 때가 많다. 특히 스탠드업 코미디에서는 코미디언이 관객을 가지고 노는 경우를 흔히 관찰할 수 있다. 또한 누군가가 자학 개그를 할 때에도 만약 그 사람이 진심으로 자신을 비난하고 학대하며 열등감을 뿜어내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를 유쾌하게 받아들일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연구자들은 위반, 온건함, 동시성의 나머지 세 가지 요소야말로 유머를 성립시키는 중요한 요소라고 보았다.
연구자들은 놀람과 우월성을 제외한 위반, 온건함, 동시성의 나머지 세 가지 요소야말로 유머를 성립시키는 중요한 요소라고 보았다. 예컨대 "따듯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 같은 말 실수, "나 오늘 똥루었다 원래 의도: 나 오늘 또 울었다)" 같은 오타, 우스꽝스럽게 넘어지거나 방구를 끼는 등의 행동적 실수나 엉뚱한 행동, 흉폭하고 위협적이려고 했으나 전혀 그렇지 않은 모습(랫서팬더, 성난 아기 고양이) 등은 대부분 원래의 규칙과 상식에서 벗어나는 종류의 것들이다.

동시성의 경우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이디어들이 동시에 제시되는 것으로 ‘반전’ 같은 것을 떠올려 보면 되겠다. 예를 들어 유명한 시트콤 ‘오피스’에서 상사 역할을 맡은 주인공이 “사람들은 나를 보고 최고의 상사라고 말해요. 당신 같은 상사는 지금까지 없었어요. 덕분에 많이 배우고 성장했어요 고마워요-라고들 하죠”라고 하며 World’s best boss(세계 최고의 상사)라고 쓰여진 컵을 들어보인다. “아 이 컵이요? 다이소 가서 샀어요”. 자신을 향해 감사하는 뜻이 담긴 물건들의 경우 보통 누군가에게 선물받기 마련인데 이런 개념을 뒤집음으로써 웃음을 유발한 것이다.

하지만 위반과 반전이 존재해도 ‘온건함’이 존재하지 않다면 이는 더 이상 유머가 아니게 된다. 즉 원래의 의도와 상관 없이 실제적인 위험이나 비도덕적이거나 차별적인 내용이 없어서 ‘해롭지 않을 것’ 또한 유머의 필수 요소다. 과장된 말이나 액션도 실제로 다치거나 상처받는 일이 없어야 함을 모두가 합의했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것이지 만약 심각한 피해가 발생한다면 그건 학대 또는 범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결국 해롭지 않은, 누구나 감당할 수 있고 상호 합의 하에 허용되는 범위에서 상식을 깨거나 선을 넘는 것, 즉 “예의 바르고 아무도 다치지 않는 위반”이 유머의 핵심임을 기억해보자.

※관련자료
Warren, C., Barsky, A., & McGraw, A. P. (2021). What makes things funny? An integrative review of the antecedents of laughter and amusement.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Review, 25, 41–65.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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