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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역사추적 – 제주 동굴진지의 비밀 1부 _ 결7호 작전, 제주도를 사수하라
https://www.youtube.com/watch?v=tisM3cKiRJE
제주 서남부에 위치한 한 오름. 그 속에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동굴이 있다. 그것은 일제가 건설한 지하요새이다. 제주도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동굴 진지는 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 왜 제주 모슬포에 비행장이 들어섰을까?
1936년 11월 17일 일본 해군에 기밀훈령이 내려진다.
제주 대정면 모슬포에 항공기지를 건설하라는 것.
이에 따라 약 70만㎡의 비행장이 건설된다. 이후 제주도는 중국 폭격의 거점이 되고, 알뜨르에는 일본 큐슈에 있던 오무라 해군항공대가 이전한다.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43년. 주민들이 강제 동원되어 비행장 확장 공사가 시작된다. 동시에 지하에 대형 동굴 진지가 조성되는데...
- 알뜨르에는 거대한 해안 결전 기지가 있었다!
알뜨르 비행장 부근 셋알오름. 그 지하에 일제가 구축한 동굴 진지가 있다. 동굴은 너비 4m, 길이 3m 50cm로 차량 통행이 가능한 규모이다. 또 오름 정상엔 고각포도 있다.
이는 공습으로부터 비행장을 지키기 위해 건설한 것이다.
모슬포 해안의 송악산에도 동굴진지가 있다. 능선을 따라 개미굴처럼 파인 갱도가 900m. 알뜨르 비행장에서 송악산에 이르는 모슬포 해안 결전기지 전체가 KBS 취재진에 의해 사상 처음으로 공개된다.
- 제주도는 태평양 전쟁의 요충지였다!
1944년 6월 98대의 미군 폭격기가 중국 청뚜(成都) 비행장을 이륙한다. ‘하늘의 요새’라 불리던 B-29 폭격기가 사상 처음으로 일본 본토를 폭격하려는 것이었다. 목표는 일본 키타큐슈의 야하타 제철소. 그러나 이 공습은 실패한다. 일본 육군이 모슬포에 세운 레이더 기지가 사전에 B29를 포착해냈기 때문이다. 이후 미군은 제주도의 전략적 가치에 주목해 직접 공격에 나서는데...
- 결 7호 작전, 제주도를 사수하라
미국의 상륙이 임박해지자 일본은 본토사수를 위해 ‘결호 작전’을 실시한다. 미군의 상륙 가능성과 중요도에 따라 전국을 7개 권역으로 나누어 1호부터 7호까지 각각 방위 계획을 부여한다. 제주도는 대한해협의 수송로를 확보하고 일본의 전쟁을 지속하게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지역이었다.
이에 따라 당시 일본 최정예 육군이었던 관동군 2개 사단과 일본 본토의 부대까지 제주도에 집결시킨다. 병력은 7만 5천. 일본이 당시 한반도에 주둔시킨 전체 병력 22만 명의 3분의 1이 넘는 숫자였다. ‘결 7호 작전’은 곧 제주도 사수 작전이었던 것이다.
- 제주도, 요새가 되다
일본 본토를 지키려면 제주도를 지켜야 했다.
제주도 사수를 위해 섬 전체에 무수한 동굴 진지가 파였다.
1945년 6월까지 일본 육군에서 판 동굴진지만도 67개소에 3.2km에 이른다. 일제는 위장진지, 전진 기지, 주 저항 진지, 복곽 진지로 나누어, 해안선부터 한라산 중턱 어승생악까지 그물처럼 동굴진지를 구축한다. 1945년 8월 제주도는 섬 전체가 하나의 요새였다. 제주도와 아무 상관도 없는 전쟁 때문에 제주도민에게 죽음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KBS 역사추적 – 제주동굴진지의 비밀 2부 자살특공기지를 구축하라
https://www.youtube.com/watch?v=AAbHP493KAo
제주도 해안 곳곳에서 발견되는 동굴들. 그것은 일본군이 구축해 놓은 자살특공기지였다. 태평양 전쟁 말기 제주도에 만들어진 인간어뢰 카이텐(回天)과 자살보트 신요(震洋)의 기지, 그리고 조천읍 교래리에 만들어진 가미카제 비행장까지 일본제국주의가 제주도에서 준비하고 있었던 최후 결전의 현장을 추적한다.
- 일제는 왜 제주도에 모든 화력과 병력을 집중했나?
미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찾아낸, 패전 시기 일본군 무장해제 사진과 동영상. 이를 통해 보면 전쟁 말기 일본은 각종 포와 탱크, 비행기를 포함한 9만 2천 점의 무기를 제주도에 배치시킨다. 또한 관동군을 포함한 7만 5천 명의 병력을 투입한다.
- 오키나와 24만 명의 희생, 제2의 오키나와 제주도
1945년 3월 미군은 오키나와에 상륙. 3개월간 지상전을 벌인다. 이 전쟁으로 오키나와에서는 주민 9만 명을 포함한 24만 명이 사망한다. 일본은 본토 결전을 위한 시간벌이를 위해 무고한 오키나와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았고,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집단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1945년 6월 일제는 제주도에 오키나와와 유사한 동굴 진지를 건설, 제주 역시 일본 본토 침입 저지를 위한 기지로 준비하고 있었다.
1945년 여름 제주는 제2의 오키나와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 제주도에 남아 있는 자살특공기지
일본군은 제주에 신요(震洋)기지와 카이텐(回天)기지를 만들었다.
폭탄을 싣고 적함에 부딪혀 폭발하는 소형고속보트 ‘신요(震洋)’, 적군을 향해 돌진하는 인간어뢰 ‘카이텐(回天)’. 일제는 이와 같은 자살특공기지를 제주도 주요 해안지역에 구축하고 실제로 100대의 신요와 560명의 특공대를 배치했다.
- 일본은 제주도에 가미카제 비행장을 건설했다
일본 기밀작전일지에는 제주도 교래리에 비밀 비행장 건설을 지시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교래리 비밀 비행장은 가미카제를 위한 특별 비행장이었다. 제주도에는 히엔이라고 불리는 일본 육군 가미카제 비행기가 배치돼 있었다.
-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은 제주도의 상처
1945년 봄. 미군의 B-29 공습이 빈번해지고 전쟁의 위기가 고조된다. 일본군은 제주도 주민들을 산으로 데리고 피신할 계획을 준비한다. 제2의 오키나와 비극이 발생할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 다행히 일본의 항복으로 제주도는 위험에서 벗어난다. 지금도 제주 곳곳에는 수많은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다. 우리가 이것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을 때 제주는 진정한 ‘평화의 섬’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KBS 역사추적 – 제주 동굴진지의 비밀 1부 _ 결7호 작전, 제주도를 사수하라
https://www.youtube.com/watch?v=tisM3cKiRJE
제주 서남부에 위치한 한 오름. 그 속에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동굴이 있다. 그것은 일제가 건설한 지하요새이다. 제주도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동굴 진지는 대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 왜 제주 모슬포에 비행장이 들어섰을까?
1936년 11월 17일 일본 해군에 기밀훈령이 내려진다.
제주 대정면 모슬포에 항공기지를 건설하라는 것.
이에 따라 약 70만㎡의 비행장이 건설된다. 이후 제주도는 중국 폭격의 거점이 되고, 알뜨르에는 일본 큐슈에 있던 오무라 해군항공대가 이전한다.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43년. 주민들이 강제 동원되어 비행장 확장 공사가 시작된다. 동시에 지하에 대형 동굴 진지가 조성되는데...
- 알뜨르에는 거대한 해안 결전 기지가 있었다!
알뜨르 비행장 부근 셋알오름. 그 지하에 일제가 구축한 동굴 진지가 있다. 동굴은 너비 4m, 길이 3m 50cm로 차량 통행이 가능한 규모이다. 또 오름 정상엔 고각포도 있다.
이는 공습으로부터 비행장을 지키기 위해 건설한 것이다.
모슬포 해안의 송악산에도 동굴진지가 있다. 능선을 따라 개미굴처럼 파인 갱도가 900m. 알뜨르 비행장에서 송악산에 이르는 모슬포 해안 결전기지 전체가 KBS 취재진에 의해 사상 처음으로 공개된다.
- 제주도는 태평양 전쟁의 요충지였다!
1944년 6월 98대의 미군 폭격기가 중국 청뚜(成都) 비행장을 이륙한다. ‘하늘의 요새’라 불리던 B-29 폭격기가 사상 처음으로 일본 본토를 폭격하려는 것이었다. 목표는 일본 키타큐슈의 야하타 제철소. 그러나 이 공습은 실패한다. 일본 육군이 모슬포에 세운 레이더 기지가 사전에 B29를 포착해냈기 때문이다. 이후 미군은 제주도의 전략적 가치에 주목해 직접 공격에 나서는데...
- 결 7호 작전, 제주도를 사수하라
미국의 상륙이 임박해지자 일본은 본토사수를 위해 ‘결호 작전’을 실시한다. 미군의 상륙 가능성과 중요도에 따라 전국을 7개 권역으로 나누어 1호부터 7호까지 각각 방위 계획을 부여한다. 제주도는 대한해협의 수송로를 확보하고 일본의 전쟁을 지속하게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지역이었다.
이에 따라 당시 일본 최정예 육군이었던 관동군 2개 사단과 일본 본토의 부대까지 제주도에 집결시킨다. 병력은 7만 5천. 일본이 당시 한반도에 주둔시킨 전체 병력 22만 명의 3분의 1이 넘는 숫자였다. ‘결 7호 작전’은 곧 제주도 사수 작전이었던 것이다.
- 제주도, 요새가 되다
일본 본토를 지키려면 제주도를 지켜야 했다.
제주도 사수를 위해 섬 전체에 무수한 동굴 진지가 파였다.
1945년 6월까지 일본 육군에서 판 동굴진지만도 67개소에 3.2km에 이른다. 일제는 위장진지, 전진 기지, 주 저항 진지, 복곽 진지로 나누어, 해안선부터 한라산 중턱 어승생악까지 그물처럼 동굴진지를 구축한다. 1945년 8월 제주도는 섬 전체가 하나의 요새였다. 제주도와 아무 상관도 없는 전쟁 때문에 제주도민에게 죽음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KBS 역사추적 – 제주동굴진지의 비밀 2부 자살특공기지를 구축하라
https://www.youtube.com/watch?v=AAbHP493KAo
제주도 해안 곳곳에서 발견되는 동굴들. 그것은 일본군이 구축해 놓은 자살특공기지였다. 태평양 전쟁 말기 제주도에 만들어진 인간어뢰 카이텐(回天)과 자살보트 신요(震洋)의 기지, 그리고 조천읍 교래리에 만들어진 가미카제 비행장까지 일본제국주의가 제주도에서 준비하고 있었던 최후 결전의 현장을 추적한다.
- 일제는 왜 제주도에 모든 화력과 병력을 집중했나?
미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찾아낸, 패전 시기 일본군 무장해제 사진과 동영상. 이를 통해 보면 전쟁 말기 일본은 각종 포와 탱크, 비행기를 포함한 9만 2천 점의 무기를 제주도에 배치시킨다. 또한 관동군을 포함한 7만 5천 명의 병력을 투입한다.
- 오키나와 24만 명의 희생, 제2의 오키나와 제주도
1945년 3월 미군은 오키나와에 상륙. 3개월간 지상전을 벌인다. 이 전쟁으로 오키나와에서는 주민 9만 명을 포함한 24만 명이 사망한다. 일본은 본토 결전을 위한 시간벌이를 위해 무고한 오키나와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았고,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집단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1945년 6월 일제는 제주도에 오키나와와 유사한 동굴 진지를 건설, 제주 역시 일본 본토 침입 저지를 위한 기지로 준비하고 있었다.
1945년 여름 제주는 제2의 오키나와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 제주도에 남아 있는 자살특공기지
일본군은 제주에 신요(震洋)기지와 카이텐(回天)기지를 만들었다.
폭탄을 싣고 적함에 부딪혀 폭발하는 소형고속보트 ‘신요(震洋)’, 적군을 향해 돌진하는 인간어뢰 ‘카이텐(回天)’. 일제는 이와 같은 자살특공기지를 제주도 주요 해안지역에 구축하고 실제로 100대의 신요와 560명의 특공대를 배치했다.
- 일본은 제주도에 가미카제 비행장을 건설했다
일본 기밀작전일지에는 제주도 교래리에 비밀 비행장 건설을 지시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교래리 비밀 비행장은 가미카제를 위한 특별 비행장이었다. 제주도에는 히엔이라고 불리는 일본 육군 가미카제 비행기가 배치돼 있었다.
-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은 제주도의 상처
1945년 봄. 미군의 B-29 공습이 빈번해지고 전쟁의 위기가 고조된다. 일본군은 제주도 주민들을 산으로 데리고 피신할 계획을 준비한다. 제2의 오키나와 비극이 발생할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 다행히 일본의 항복으로 제주도는 위험에서 벗어난다. 지금도 제주 곳곳에는 수많은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다. 우리가 이것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을 때 제주는 진정한 ‘평화의 섬’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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