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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사자금이 없었으므로 상하이의 일본인 인쇄소와 악기점 등에서 일하면서 때를 기다렸다. 재미동포로부터 자금이 도착한 데 이어
상해병공창(上海兵工廠)의 주임으로 있던 중국군 대령 김홍일(金弘壹)과 중국인 류즈[劉峙]로부터 수류탄 2개를 입수함으로써 거사 준비가
마무리되자, 1931년 12월 13일 안공근(安恭根)의 집에서 두 손에 수류탄을 들고 일본 왕 히로히토[裕仁]를 처단할 것을 선서했다.
수류탄과 거사자금 300원을 지니고 일본으로 떠나 이튿날 고베[神戶]에 입항한 그는 오사카로 옮겨
21일까지 머물다가 22일 밤 도쿄에 도착했다. 일본 왕 히로히토가 만주국 괴뢰황제 푸이[溥儀]와 도쿄 교외 요요키[代代木]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거행한다는 〈아사히 신문 朝日新聞〉의 보도기사를 확인하고 상하이의 김구에게 관병식을 기회로 거사를 결행한다는 뜻을 알리는 암호전문을 타전했으며,
요요키 연병장에서 거행된 예행연습을 미리 둘러보았다. 1932년 1월 8일 도쿄 고지마치 구[麴町區] 밖 사쿠라다몬[桜田門] 앞에서 시민을
가장하여 기다리던 그는 오후 2시에 관병식을 마친 후 마차를 타고 돌아가는 일왕의 행렬이 나타나자, 군중 속에서 달려나와 히로히토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그러나 일왕이 탄 마차를 정확히 식별하지 못한 데다가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기수와 근위병에게 부상을
입혔을 뿐 일왕을 명중시키지는 못했다. 그 자리에서 품안에 있던 태극기를 꺼내 '대한독립 만세'를 3번 부른 뒤 체포되었다. 이봉창은 일본
경찰의 심문에 일체 불응한 가운데 예심조차 거치지 않고 진행된 그해 10월의 비공개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10월 10일 이치가야[市谷]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다음 백과사전편찬위원회 글 펌입니다.
젊은 나이에 조국을 위해서 순국하신 이봉창의사님 같은 분들이 계셨기에 이 나라가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고 이봉창의사님의 고귀한 희생에 조의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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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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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조국의 독립이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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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밝은 얼굴을 볼때마다 가슴 한켠이 아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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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곳에 가셔서 편히 쉬시길빕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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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한 희생 감사합니다. 편안히 쉬시길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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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행동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편히살게되었습니다.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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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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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당신의 숭고한 희생이 오늘날 너무 헛되이 되어버린게 아닌가 생각듭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