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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번역은 아래에 있어요
I'm wearing Hanfu not Hanbok!丨Hanfu Vs. Hanbok Comparison:Similarities and the Differences丨Shiyin 十音
https://www.youtube.com/watch?v=9HvIjVFmPME
번 역
나 패션 잡지에 한푸 입고 나왔다가
한국인한테 악플 받음.
한국인들이 저건 한국 한복처럼 보이는데 중국 옷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난 꿋꿋이 한국 한복은 중국 전통 의상의 짝퉁임을 밝힐 것임.
20년 전 한국 드라마 예를 들면 대장금을 보고
현재의 한국 드라마를 봐라.
확실히 중국화 되어 있지 않나? 20년 전 한국 드라마랑 옷차람이 다르잖아.
그리고
명나라 대빵이 한국 왕에게 옷 줬음.
옷을 하사한다고 역사서에 써 있음.
그리고 한국 평민은 이런 좋은 옷 입을 자격 없음.
한국인들은 이 흑백 사진의 여자차럼 요렇게 하고 다님.
고로 한복은 중국 전통 의상 짝퉁임.
----------------------
야 미친 XX 야 .....
보보경심은 고려시대
대장금은 조선시대
시대가 다르니까 옷차림이 다르지 미친 XX.....무식한 XX
고려가 명나라보다 훨씬 먼저 있던 나라거든. 미친 XX ....
고려 918년 ~ 1392년
명나라 1368년 ~ 1644년
고려가 명나라 보다 먼저인데 명나라가 고려한테 영향 주냐? 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그 흑백 사진은
일본놈이 일제시대 때 한국 여자들은 홀라당 벗고 다닌다며 가슴 내놓고 다닌다며 조작한 사진이잖아. 개년아
그래도 양심상 모자이크는 했네..
이거나 쳐 봐라 XX 야
명나라 생기기 전 원나라 때부터
한국 한복이 중국에서 대유행했다는 기사다.
元朝的蒙古人,为什么喜爱穿着朝鲜半岛的高丽服装?
https://twgreatdaily.com/zh-hans/s_HZPXMBfGB4SiUw4y_s.html
명나라 왕이 옷을 하사했다고?
ㅆㅂ 공짜니까 받지 ..... 닭대갈아......
그럼 수고~ 계속 헛소리 해.....
궁중 의복 새로이 고려 양식 숭상하니 허리 지난 모난 깃에 짤막한 옷소매네.
宮衣新尚高麗樣, 方領過腰半臂裁.
밤마다 궁중 에서 앞 다투어 구경하니 전에 이 옷을 입고 어전에 왔기 때문이라네.
連夜內家爭借看, 爲曾著過禦前來.
장욱(張昱), 궁중사(宮中詞)
붉은 비단 나라 궁녀들 직공에 능하여 궐문 안에서 이불을 수레에 실어서 간다네.
緋國宮人直女工, 衾禂載得內門中.
당번이 된 여자 짝이 보자기를 잘 만드니 고려 여인을 흉내 내어 머리로 받쳐 입궁한다네.
當番女伴能包袱, 要學高麗頂入宮
가한노인집(可閑老人集) 卷221
지정 이래 궁중의 급사와 사령은 태반이 고려의 여인이었다.
自至正以來, 宮中給事使令, 大半爲高麗女.
이 때문에 사방의 의복과 신발, 모자, 기물이 모두 고려를 따라 일시의 유행이 되었으니 어찌 우연하다 할 수 있는가?
以故, 四方衣服鞋帽器物, 皆依高麗樣子. 此關系一時風氣, 豈偶然哉.
권형(權衡), 경신외사(庚申外史)
백관의 질손복은 겨울에 모두 9등급으로 나눈다. … 여름의 질손복은 모두 14 등급으로 나눈다. 진(秦)의 금금(金錦: 실크의 한 종류)하나, 보리(寶裏)를 장식한 금금(金錦) 하나, 진주를 장식한 대추 갈색 혼금간사(渾金間絲: 실크의 한 종류) 하나, 보리(寶裏)를 장식한 진한 빨간색 관소(官素: 실크의 한 종류) 하나, 빨강색 명주답자(明珠答子: 여러 조각으로 만듬, 실크의 종류에 속함) 하나, 분홍색, 파란색, 초록색, 은갈 색 각각 하나, 고려 검푸른 색 운수라(雲袖羅) 하나, 낙타 갈색, 어두운 빨강, 백모자(白毛子) 각각 하나, 보리(寶裏)를장식한 검푸른 색 관소(官素) 하나.
百官質孫, 冬之服凡九等, … 夏之服凡十四等, 秦納石失一, 聚線寶裏納石失一,棗褐渾金間絲蛤珠一, 大紅官素寶裏一, 大紅明珠答子一, 桃紅、藍、綠、銀褐各一, 高麗鴉青雲袖羅一, 駝褐、茜紅、白毛子各一, 鴉青官素帶寶裏一.
원사(元史) 卷78 여복지(輿服志)
두청벽 선생은 소집에 응하여 전당에 갔다.
杜清碧先生本應召次錢唐
여러 유생들은 앞다투어 그의 주소로 달려갔다.
諸儒者爭趨其門.
연맹초는 시를 지어 이를 비웃었다.
燕孟初作詩嘲之,
시에는 자색의 종등(棕藤)으로 모자를 묶으며, 신발은 고려의 모양으로 만드네.
有紫藤帽子高麗靴,
처사들은 문 앞에서 잡역부를 담당하네. 란 구절이 있다.
處士門前當怯薛之句,
듣는 자가 모두 이를 전하여 웃는다.
聞者傳以爲笑.
자색의 종등으로 모자를 묶고, 고려의 모양으로 신발을 만든 것은 모두가 당시에 유행하였던 것이다.
用紫色棕藤縛帽, 而制靴作高麗國樣, 皆一時所尚.
도종의(陶宗儀), 남촌철경록(南村輟耕錄) 卷28
繡靴蹋踘句驪樣,
공 찰 때 신은 수놓은 신은 고려 것을 닮았고,
羅帕垂彎女直妝.
비탄 손수건은 구부렸다 폈다하며 여인들이 치장하네.
願汝康強好眠食,
그대여 편안히 잘 자고 잘 먹기를 바라네.
百年歡樂未渠央.
오래토록 근심 없이 즐겁기를.
양유정(楊維楨), 무제효상은체(無題效商隱體)
성화년간(1465-1478)에는 마미군이 유행하였다. 이것은 조선에서 시작하여 경사에 들어왔다. 경성사람들도 점차 이를 입는 것에 익숙해졌고, 각신(閣臣)인 만안(萬安)은 겨울과 여름에도 벗지 않았다.
(明憲宗)成化中, 馬尾裙盛行. 此制始於朝鮮國, 流入京師, 京師人亦漸習爲之, 閣臣萬安, 冬夏不脫.
사계좌(查繼佐) 죄유록(罪唯錄) 卷4 관복지(冠服志)
경성의 사인들은 마미군을 입는 것을 좋아한다. 때문에 관말의 말갈기와 꼬리를 홈쳐 뽑는 경우가 생겼다. 이는 군대의 큰일을 지체하는 것이니 금지하기를 청한다.
京中士人好着馬尾襯裙, 因此官馬被人偷拔鬃尾, 有誤軍國大計 乞要禁革.
풍몽룡(馮夢龍) 고금소사(古今笑史)
원황후도 역시 고려미인으로 삼아, 대신유권자는 곧 이를 귀하게 여겨, 수도 고관귀인은 반드시 고려여자를 얻은 후에야 명가가 된다. 그렇게 된 이래, 궁중급사사령 대반이 고려여자이며, 이런 이유로 사방의 의복, 신발과 모자, 기물 모든것을 고려를 모방해, 온 세상이 미친 것 같다.
後亦多畜高麗美人, 大臣有權者, 輒以此遺之, 京師達官貴人, 必得高麗女, 然後爲名家. 自至正以來, 宮中給事使令, 大半高麗女, 以故四方衣服、靴帽、器物, 皆仿高麗, 擧世若狂.
속자치통감(續資治通鑒) 卷214, 원기(元紀) 32
馬尾裙始於朝鮮國, 流入京師, 京師人買服之, 未有能織者. 初服者, 惟富商, 貴公子, 歌妓而已, 以後武臣多服之, 京師始有織賣者. 於是無貴無賤, 服者日盛. 至成化末年, 朝官多服之者矣. 大抵服者, 下體虛奓, 取觀美耳. 閣老萬公安, 冬夏不脫. 宗伯周公洪謨, 重服二腰, 年幼侯伯駙馬, 至有以弓弦貫其齊者. 大臣不服者, 惟黎吏侍淳一人而已. 此服妖也, 弘治初始有禁例.
마미군(馬尾裙)은 조선국에서 비롯되어 수도에 유입되어 수도 사람들이 이를 사고 입었으나 능히 이를 짤 수 있는 직공이 있지 않았다. 처음에 입은 자들은 부유한 상인, 귀족, 기생뿐이었으나 이후 무신(武臣)들 대다수가 이를 입었으니 수도에서 비로소 이를 짜서 파는 자가 생겼다. 이에 귀천을 떠나 입는 자가 날로 성해졌다. 성화(成化, 1465년~1487년) 말년에 이르러서는 조정의 대신들 대부분이 이를 입었다. 대체로 옷은 하체가 비어있고 펴져있으니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각로(閣老, 조정의 원로대신)들과 뭇 공(公)들은 이를 편안히 여겨 겨울과 여름에도 벗지 않는다. 종백(宗伯, 예조판서) 주홍모(周洪謨, 1420년-1492년)는 두 옷으로 겹쳐 입었고, 나이 어린 후(候), 백(伯), 부마(駙馬)들은 활시위를 옷자락에 꿰놓은 자가 있을 정도다. 대신들 중에 안 입는 자들은 여리(黎吏)와 시순(侍淳, 종)들뿐이다. 이 옷은 요사스러워, 홍치(弘治,1488년-1505년) 초기에 비로소 이를 금지하는 법례가 생겨났다.
숙원잡기(菽園雜記) 卷10
I'm wearing Hanfu not Hanbok!丨Hanfu Vs. Hanbok Comparison:Similarities and the Differences丨Shiyin 十音
https://www.youtube.com/watch?v=9HvIjVFmPME
번 역
나 패션 잡지에 한푸 입고 나왔다가
한국인한테 악플 받음.
한국인들이 저건 한국 한복처럼 보이는데 중국 옷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난 꿋꿋이 한국 한복은 중국 전통 의상의 짝퉁임을 밝힐 것임.
20년 전 한국 드라마 예를 들면 대장금을 보고
현재의 한국 드라마를 봐라.
확실히 중국화 되어 있지 않나? 20년 전 한국 드라마랑 옷차람이 다르잖아.
그리고
명나라 대빵이 한국 왕에게 옷 줬음.
옷을 하사한다고 역사서에 써 있음.
그리고 한국 평민은 이런 좋은 옷 입을 자격 없음.
한국인들은 이 흑백 사진의 여자차럼 요렇게 하고 다님.
고로 한복은 중국 전통 의상 짝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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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미친 XX 야 .....
보보경심은 고려시대
대장금은 조선시대
시대가 다르니까 옷차림이 다르지 미친 XX.....무식한 XX
고려가 명나라보다 훨씬 먼저 있던 나라거든. 미친 XX ....
고려 918년 ~ 1392년
명나라 1368년 ~ 1644년
고려가 명나라 보다 먼저인데 명나라가 고려한테 영향 주냐? 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그 흑백 사진은
일본놈이 일제시대 때 한국 여자들은 홀라당 벗고 다닌다며 가슴 내놓고 다닌다며 조작한 사진이잖아. 개년아
그래도 양심상 모자이크는 했네..
이거나 쳐 봐라 XX 야
명나라 생기기 전 원나라 때부터
한국 한복이 중국에서 대유행했다는 기사다.
元朝的蒙古人,为什么喜爱穿着朝鲜半岛的高丽服装?
https://twgreatdaily.com/zh-hans/s_HZPXMBfGB4SiUw4y_s.html
명나라 왕이 옷을 하사했다고?
ㅆㅂ 공짜니까 받지 ..... 닭대갈아......
그럼 수고~ 계속 헛소리 해.....
궁중 의복 새로이 고려 양식 숭상하니 허리 지난 모난 깃에 짤막한 옷소매네.
宮衣新尚高麗樣, 方領過腰半臂裁.
밤마다 궁중 에서 앞 다투어 구경하니 전에 이 옷을 입고 어전에 왔기 때문이라네.
連夜內家爭借看, 爲曾著過禦前來.
장욱(張昱), 궁중사(宮中詞)
붉은 비단 나라 궁녀들 직공에 능하여 궐문 안에서 이불을 수레에 실어서 간다네.
緋國宮人直女工, 衾禂載得內門中.
당번이 된 여자 짝이 보자기를 잘 만드니 고려 여인을 흉내 내어 머리로 받쳐 입궁한다네.
當番女伴能包袱, 要學高麗頂入宮
가한노인집(可閑老人集) 卷221
지정 이래 궁중의 급사와 사령은 태반이 고려의 여인이었다.
自至正以來, 宮中給事使令, 大半爲高麗女.
이 때문에 사방의 의복과 신발, 모자, 기물이 모두 고려를 따라 일시의 유행이 되었으니 어찌 우연하다 할 수 있는가?
以故, 四方衣服鞋帽器物, 皆依高麗樣子. 此關系一時風氣, 豈偶然哉.
권형(權衡), 경신외사(庚申外史)
백관의 질손복은 겨울에 모두 9등급으로 나눈다. … 여름의 질손복은 모두 14 등급으로 나눈다. 진(秦)의 금금(金錦: 실크의 한 종류)하나, 보리(寶裏)를 장식한 금금(金錦) 하나, 진주를 장식한 대추 갈색 혼금간사(渾金間絲: 실크의 한 종류) 하나, 보리(寶裏)를 장식한 진한 빨간색 관소(官素: 실크의 한 종류) 하나, 빨강색 명주답자(明珠答子: 여러 조각으로 만듬, 실크의 종류에 속함) 하나, 분홍색, 파란색, 초록색, 은갈 색 각각 하나, 고려 검푸른 색 운수라(雲袖羅) 하나, 낙타 갈색, 어두운 빨강, 백모자(白毛子) 각각 하나, 보리(寶裏)를장식한 검푸른 색 관소(官素) 하나.
百官質孫, 冬之服凡九等, … 夏之服凡十四等, 秦納石失一, 聚線寶裏納石失一,棗褐渾金間絲蛤珠一, 大紅官素寶裏一, 大紅明珠答子一, 桃紅、藍、綠、銀褐各一, 高麗鴉青雲袖羅一, 駝褐、茜紅、白毛子各一, 鴉青官素帶寶裏一.
원사(元史) 卷78 여복지(輿服志)
두청벽 선생은 소집에 응하여 전당에 갔다.
杜清碧先生本應召次錢唐
여러 유생들은 앞다투어 그의 주소로 달려갔다.
諸儒者爭趨其門.
연맹초는 시를 지어 이를 비웃었다.
燕孟初作詩嘲之,
시에는 자색의 종등(棕藤)으로 모자를 묶으며, 신발은 고려의 모양으로 만드네.
有紫藤帽子高麗靴,
처사들은 문 앞에서 잡역부를 담당하네. 란 구절이 있다.
處士門前當怯薛之句,
듣는 자가 모두 이를 전하여 웃는다.
聞者傳以爲笑.
자색의 종등으로 모자를 묶고, 고려의 모양으로 신발을 만든 것은 모두가 당시에 유행하였던 것이다.
用紫色棕藤縛帽, 而制靴作高麗國樣, 皆一時所尚.
도종의(陶宗儀), 남촌철경록(南村輟耕錄) 卷28
繡靴蹋踘句驪樣,
공 찰 때 신은 수놓은 신은 고려 것을 닮았고,
羅帕垂彎女直妝.
비탄 손수건은 구부렸다 폈다하며 여인들이 치장하네.
願汝康強好眠食,
그대여 편안히 잘 자고 잘 먹기를 바라네.
百年歡樂未渠央.
오래토록 근심 없이 즐겁기를.
양유정(楊維楨), 무제효상은체(無題效商隱體)
성화년간(1465-1478)에는 마미군이 유행하였다. 이것은 조선에서 시작하여 경사에 들어왔다. 경성사람들도 점차 이를 입는 것에 익숙해졌고, 각신(閣臣)인 만안(萬安)은 겨울과 여름에도 벗지 않았다.
(明憲宗)成化中, 馬尾裙盛行. 此制始於朝鮮國, 流入京師, 京師人亦漸習爲之, 閣臣萬安, 冬夏不脫.
사계좌(查繼佐) 죄유록(罪唯錄) 卷4 관복지(冠服志)
경성의 사인들은 마미군을 입는 것을 좋아한다. 때문에 관말의 말갈기와 꼬리를 홈쳐 뽑는 경우가 생겼다. 이는 군대의 큰일을 지체하는 것이니 금지하기를 청한다.
京中士人好着馬尾襯裙, 因此官馬被人偷拔鬃尾, 有誤軍國大計 乞要禁革.
풍몽룡(馮夢龍) 고금소사(古今笑史)
원황후도 역시 고려미인으로 삼아, 대신유권자는 곧 이를 귀하게 여겨, 수도 고관귀인은 반드시 고려여자를 얻은 후에야 명가가 된다. 그렇게 된 이래, 궁중급사사령 대반이 고려여자이며, 이런 이유로 사방의 의복, 신발과 모자, 기물 모든것을 고려를 모방해, 온 세상이 미친 것 같다.
後亦多畜高麗美人, 大臣有權者, 輒以此遺之, 京師達官貴人, 必得高麗女, 然後爲名家. 自至正以來, 宮中給事使令, 大半高麗女, 以故四方衣服、靴帽、器物, 皆仿高麗, 擧世若狂.
속자치통감(續資治通鑒) 卷214, 원기(元紀) 32
馬尾裙始於朝鮮國, 流入京師, 京師人買服之, 未有能織者. 初服者, 惟富商, 貴公子, 歌妓而已, 以後武臣多服之, 京師始有織賣者. 於是無貴無賤, 服者日盛. 至成化末年, 朝官多服之者矣. 大抵服者, 下體虛奓, 取觀美耳. 閣老萬公安, 冬夏不脫. 宗伯周公洪謨, 重服二腰, 年幼侯伯駙馬, 至有以弓弦貫其齊者. 大臣不服者, 惟黎吏侍淳一人而已. 此服妖也, 弘治初始有禁例.
마미군(馬尾裙)은 조선국에서 비롯되어 수도에 유입되어 수도 사람들이 이를 사고 입었으나 능히 이를 짤 수 있는 직공이 있지 않았다. 처음에 입은 자들은 부유한 상인, 귀족, 기생뿐이었으나 이후 무신(武臣)들 대다수가 이를 입었으니 수도에서 비로소 이를 짜서 파는 자가 생겼다. 이에 귀천을 떠나 입는 자가 날로 성해졌다. 성화(成化, 1465년~1487년) 말년에 이르러서는 조정의 대신들 대부분이 이를 입었다. 대체로 옷은 하체가 비어있고 펴져있으니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각로(閣老, 조정의 원로대신)들과 뭇 공(公)들은 이를 편안히 여겨 겨울과 여름에도 벗지 않는다. 종백(宗伯, 예조판서) 주홍모(周洪謨, 1420년-1492년)는 두 옷으로 겹쳐 입었고, 나이 어린 후(候), 백(伯), 부마(駙馬)들은 활시위를 옷자락에 꿰놓은 자가 있을 정도다. 대신들 중에 안 입는 자들은 여리(黎吏)와 시순(侍淳, 종)들뿐이다. 이 옷은 요사스러워, 홍치(弘治,1488년-1505년) 초기에 비로소 이를 금지하는 법례가 생겨났다.
숙원잡기(菽園雜記) 卷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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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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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얘네들은 걍 바퀴벌레 같은 놈들 이에요. 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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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몰살시켜야 하는 민족.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