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봉창의사께서 순국하신 날입니다. > 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회원로그인

네이버 아이디로 로그인 Sign in with googleSign in with kakao
자동로그인

오늘은 이봉창의사께서 순국하신 날입니다.
 
sylar1004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작성일: 2016-10-10 13:56:33 조회: 1,034  /  추천: 32  /  반대: 0  /  댓글: 7 ]

본문



김구(金九)의 주선으로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에 가입한 뒤 일본 왕의 암살을 자원하여 1년 이내에 이를 실행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당장
거사자금이 없었으므로 상하이의 일본인 인쇄소와 악기점 등에서 일하면서 때를 기다렸다. 재미동포로부터 자금이 도착한 데 이어
상해병공창(上海兵工廠)의 주임으로 있던 중국군 대령 김홍일(金弘壹)과 중국인 류즈[劉峙]로부터 수류탄 2개를 입수함으로써 거사 준비가
마무리되자, 1931년 12월 13일 안공근(安恭根)의 집에서 두 손에 수류탄을 들고 일본 왕 히로히토[裕仁]를 처단할 것을 선서했다.

수류탄과 거사자금 300원을 지니고 일본으로 떠나 이튿날 고베[神戶]에 입항한 그는 오사카로 옮겨
21일까지 머물다가 22일 밤 도쿄에 도착했다. 일본 왕 히로히토가 만주국 괴뢰황제 푸이[溥儀]와 도쿄 교외 요요키[代代木]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거행한다는 〈아사히 신문 朝日新聞〉의 보도기사를 확인하고 상하이의 김구에게 관병식을 기회로 거사를 결행한다는 뜻을 알리는 암호전문을 타전했으며,
요요키 연병장에서 거행된 예행연습을 미리 둘러보았다. 1932년 1월 8일 도쿄 고지마치 구[麴町區] 밖 사쿠라다몬[桜田門] 앞에서 시민을
가장하여 기다리던 그는 오후 2시에 관병식을 마친 후 마차를 타고 돌아가는 일왕의 행렬이 나타나자, 군중 속에서 달려나와 히로히토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그러나 일왕이 탄 마차를 정확히 식별하지 못한 데다가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기수와 근위병에게 부상을
입혔을 뿐 일왕을 명중시키지는 못했다. 그 자리에서 품안에 있던 태극기를 꺼내 '대한독립 만세'를 3번 부른 뒤 체포되었다. 이봉창은 일본
경찰의 심문에 일체 불응한 가운데 예심조차 거치지 않고 진행된 그해 10월의 비공개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10월 10일 이치가야[市谷]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다음 백과사전편찬위원회 글 펌입니다.

 

젊은 나이에 조국을 위해서 순국하신 이봉창의사님 같은 분들이 계셨기에 이 나라가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고 이봉창의사님의 고귀한 희생에 조의를 표합니다. 

 


추천 32 반대 0

댓글목록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조국의 독립이 이루어졌습니다.
지금의 조국은 조국이라고 말하기에도 어려울 정도로 친일파, 왜놈들의 세상이 되었지만요.

    6 0

저 밝은 얼굴을 볼때마다 가슴 한켠이 아려옵니다.
죽음을 앞에두고 저렇게 해맑게 웃을 수 있으시다니....

    2 0

좋은곳에 가셔서 편히 쉬시길빕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2 0

숭고한 희생 감사합니다.  편안히 쉬시길 바랍니다..

    0 0

당신의행동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편히살게되었습니다.감사합니다.

    0 0

정말 고맙습니다
사진을 보니 가슴이 먹먹 해져서...
친일파도 처단하지 못하고...
그냥 죄송할 뿐입니다.

    0 0

고맙습니다. 당신의 숭고한 희생이 오늘날 너무 헛되이 되어버린게 아닌가 생각듭니다...

    0 0



리모컨

맨위로
 댓 글 
 목 록 
회사소개 개인정보처리방침 서비스이용약관 메일문의 Copyright © 딜바다닷컴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