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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이트에 올린 글이라 반말체 양해 부탁해요.
일요일 아침 모처럼 일찍 일어나 라운딩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섬주섬 옷가지와 물병을 챙기는 나를 아내가 뜨악하게 보더니 어딜 갈려는 것이냐고 묻는다. 골프를 간다고 이야기했더니 방금 세탁기에서 꺼낸 구겨진 셔츠처럼 아내의 용안이 구겨진다. 일요일 오후에 ‘10cm’라는 이상한 이름의 가수의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단다. 아내 자신은 대구 시내까지 운전해서 갈 자신이 없고 ‘당연히’나도 같이 가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물론 비록 불과 이틀 전에 잡은 약속이지만 나의 라운딩 계획을 아내에게 말을 하지 않은 나에게도 귀책사유는 있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아내도 책임이 있다. 일요일에 무슨 공연을 보러 간다는 이야기는 귀동냥으로 듣긴 했지만 어쨌든 나의 의사를 물어봤어야 했다. 공연 이야기를 자기들 둘이(아내와 딸) 이야기 하면서 나에게는 전혀 그 건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길래 그냥 나를 제외하고 공연을 좋아하는 고귀하신 분들만 가는 줄 알았다.
높으신 두 양반이 결정하면 나는 그 정책에 무조건 따라야만 하는 평민이란 말인가? 라는 생각에 울컥 화가 났다. 나는 라운딩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결정을 했지만, 아내와 딸에게 ‘라운딩 도중 먹을 김밥을 만들어라’, ‘포카리스웨트를 얼려두도록 해라’ ‘ 라운딩을 떠나는 가장을 배웅하도록 해라’는 요구를 하지도 않았고 티브이에서 나오는 것처럼 피켓을 들고 응원하는 것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왜 저들은 자신들의 취미생활에 내가 당연히 수행 비서를 해야 한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단 말인가? 이런 생각은 생각이고 현실은 다르다. 나는 그들과 그 흥겨운 공연을 함께 가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갈 때는 불편하더라도 기차를 이용하시면 오실 때는 내가 대구까지 골프를 마치고 가겠으니 함께 저녁이라도 같이 먹는 영광을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을 드렸다.
제법 화가 난 듯한 아내는 나의 제안을 거절했고 나는 골프가방을 들고 한참 동안을 안방 앞에서 서 있었다. 마치 양위를 통보한 영조의 대전 앞에서 석고대죄를 하는 사도세자의 심정이랄까. 어쨌든 무거운 마음으로 라운딩을 갔는데 골프가 제대로 되겠는가? 엎친 데 덮친다고 골프장 잔소리 대마왕인 내 친구 녀석이 내기 골프를 하잔다. 강력히 거부했는데도 결국 내기를 했고 라운딩 중반쯤 나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해야만 했다. 골프장에서 대출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이라도 했겠는가? 캐디하러 왔다가 졸지에 빛 보증을 서게 된 양반은 무슨 죄란 말인가?
골프를 치는 것보다 한 홀이 끝날 때마다 동반자들에게 줄 돈을 계산하고 지급하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내우외환에 시달린 나는 멘탈이 무너져서 어떤 홀에서는 공은 그 자리에 있는데 공을 받치고 있던 핀만 허공으로 날리는 골프 기술의 신기원을 이룩하기도 했다.
동반자들은 그 명장면을 미리 촬영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그 장면을 유튜브에 올리면 싸이의 강남스타일의 조회 수에 버금가겠단다.
마치 참전한 군인이 고향에 두고 온 식구 걱정을 하는 것처럼 신경을 쓰자, 친구 녀석은 우리 나이(49살)가 되면 아내들은 남편들이 집에 있으면 오히려 더 싫어한단다. 그 친구에게 나는 반박을 했다. 너처럼 집에 있으면서 삼시세끼 꼬박 챙겨주길 바라고, 이것저것 잔소리를 하니까 아내가 싫어하는 것이지 나처럼 얌전하게 혼자 밥을 챙겨 먹을 줄 알고 잔소리를 전혀 하지 않는 남편은 오히려 집을 나가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이다.
오늘만 해도 우리 아내는 내가 집을 나가는 것을 얼마나 아쉬워했느냔 말이다. 골프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밤 10시 55분에 기차역에 도착하니 마중을 나와 달란다. 확실히 내 아내는 모든 순간을 나와 함께 하길 원한다. 나는 성은이 망극 하옵니다고 감사를 표시한 후 공연을 관람한 두 여자분의 피곤을 한치라도 증가시키지 않도록 기차역에서 기다렸다가 집으로 모셔왔다.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전날 라운딩으로 피곤했지만, 일찍 일어나 등교하는 딸아이의 기사 노릇을 할 준비를 마쳤다. 기사대기실(서재)에서 기다리는데 높으신 분(딸아이)가 기사를 부른다. 딸아이를 모시고 집을 나가려는데 아내가 ‘도윤이 학교에 데려다주고 곧바로 도서관에 갈 거지?란다. 요 며칠 원고도 쓰고 책을 읽겠다고 도서관에 몇 번 다니긴 했다.
나도 문학을 전공한 남자다, 아내의 말의 사전적인 의미와 함께 함축적인 의미도 파악할 수 있는데 ‘도윤이 학교에 데려다주고 곧바로 도서관에 갈 거지갈거지?“라는 아내의 말은 ‘당신 도서관에 꼭 가야 해. 나 혼자 있고 싶어’라는 뜻이었다. 그 말을 듣고 마치 추상같은 임금님의 지시를 따르듯이, 무허가 건물에 몰라 살다가 철거반에 쫓겨나듯이, 나는 주섬주섬 짐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49살이 되도록 난생처음 도서관이 문을 열기를 기다리다 열람실에 들어왔다. 내가 공시생도 아닌데 도서관 화장실에서 세수했고 로션을 바르지 못해 얼굴이 무척 땅긴다. 오늘따라 내가 도서관을 찾는 이유의 8할인 에어컨도 가동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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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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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력도 좋으시고 재미난데 반응이 신통찮아 의아해하고 계실수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폰으로 보는데 행 오른쪽 글이 다 잘려서 다음행과 내용연결이 안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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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맙습니다..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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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남다르시다 생각했더니.. 역시나 작가셨군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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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고 하긴 그렇군요...그냥 잡문이죠...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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햐~ 오늘도 일하고 묵혀두었다가 집에와서 읽는데 울컥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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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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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우리 골포 회원들의 문학 소양도 늘리게 가끔씩 글 좀 써주세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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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알겠습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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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울컥하네요.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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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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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100프로....울쩍해지네요 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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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해주셔서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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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년의 현주소네요....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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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글츄...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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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려서 볼수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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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역시 작가님은 다르시군요 글의 짜임새가 ^_^ 부럽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