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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이야기를 옮기고 있습니다. 용어와 호칭에 혼선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드니에페르 강 하류가 완전히 정리되는 우탄 수비선 공방전입니다. 사실 공방전이라고 하기에는 무리인 것이, 압도적인 병력으로 밀어붙이는 러시아군에게 독일군이 조금씩 밀려나다가 전멸위기에서 간신히 벗어나는 전투였습니다.
제 이야기를 처음보시는 분은 당연히 처음 이야기부터 보셔야 상황이 연결되겠죠? 그리고 크롬에서 작성한 글의 포맷이 깨진 것이 많은데 불편하더라도 당분간은 그냥 봐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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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탄(Wotan) 수비선을 향해
톨부킨의 전차 멜리토폴을 향해 진격-30번의 공격과 30번의 방어-25대의 전차만 남은 독일 제6군-군단 탈출-살아남은 군-고립된 크리미아
자포로즈예 전투는 독일군에게 많은 피해를 주지 못했기 때문에,러시아군에게 있어서 역사에 남을 대단한 승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1943년 러시아군이 드니에페르 강 일대에서 거둔 승리 중에 가장 중요하고 파급력이 큰 승리였을 것이다. 위대한 조국해방전의 기록에 따르면 "자포로즈예를 해방시키면서 우크라이나 남부의 상황이 완전히 변했다."라고 증언하고 있다. 자포로즈예를 탈환하면서 러시아군은 드니에페르 하류까지 진격할 수 있었고 크리미아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 이제 러시아 최고사령부는 제6군을 공격해 전멸시키는 동시에 크리미아도 고립시키기로 결정한다.
드니에페르 하류 전투 후에 크리미아는 본토와 완전히 단절됩니다. 히틀러는 니코폴(Nikopol)에서 어떻게든 다시 크리미아와 전선을 연결시키려는 무리한 도박을 벌이게 됩니다.
역사 속의 어떤 군대도 병력이 보충되지도 않고 보급도 제대로 받지 않으면서 1년 내내 격렬한 전투를 벌여 이긴 적이 없었는데 드니에페르 일대의 독일군가 바로 그런 신세였다. 이제 드니에페르 하류에서도 러시아군이 숫자로 밀어붙이는 전투가 시작되고 독일군 29군단의 사단들은 우탄 수비선으로 후퇴를 했다. 추격하는 적과 힘든 전투를 벌인 제17 보병사단의 제55 기갑척탄병 연대는 3일 동안 40대의 T-34를 파괴시켰다. 그렇지만 아무리 초인적인 활약을 펼쳐도 숨을 곳이 전혀 없는 스텝 평야에서 러시아의 6개 군을 계속 막아낼 수는 없었다. 러시아군의 압도적인 병력은 독일군의 경험으로 어찌해볼 차원을 이미 넘어섰다. 10월이 시작되면서 러시아군은 45개 보병사단, 2개 기갑군단, 3개 전차군단, 2개 기병군단으로 우탄 수비선에 대해 압박을 가했다.
800대의 전차가 선봉대에 섰고 4백문의 야포와 200문의 박격포가 독일군 제6군에게 포탄을 퍼부었다.독일군은 제6군의 2개 전차사단과 3개 대전차 대대가 가진 181대의 전차와 구축전차 전부를 동원해 러시아군의 진격로를 가로막았다. 보병사단은 노가이(Nogay) 스텝의 메마른 땅 위에 죽음의 수비선을 펼쳤다. 기갑척탄병, 산악엽병, 항공사단은 이미 전력이 바닥난 상태였지만 자신들이 물러서면 러시아군의 재앙을 막아낼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포로즈예, 아조프 해, 크리미아를 잇는 삼각형의 대평원을 잃게 되고 크리미아의 제17군이 완전히 단절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지옥의 악마를 상대로 버텨내겠다는 것일까? 고지대, 습지는 말할 것도 없고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없는 평원에서는 대전차포가 숨어 기다릴 수 있는 곳도 없고, 적의 관측병이 유도하는 포화를 피할 곳도 없었다.
우탄 수비선이라는 이름은 뭔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지만 실제로는 급하게 판 대전차 호를 따라 보병참호가 얼기 설기 만들어진, 수비선이라고 부르기도 힘들었다. 고작 몰레츠나야(Molechnaya) 지류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자연 방어물로 크리미아와 루마니아의 운명을 건 결전을 벌일 수 있는 곳은 절대로 아니었다.
9월 27일부터 10월 8일까지의 2주 동안, 제6군은 물러나지 않고 버텨냈지만 그것이 고작이었다. 10월9일 오전 10시, 톨부킨(Tolbukin)은 지옥의 문을 다시 열었다. 1시간 동안 15,000발의 포탄이 15km정도의 전선에 쏟아졌으니까, 약 1미터에 한 발의 포탄이 떨어졌다. 그리고는 승리를 확신한 보병이 "우라(Urrah)!"라고 외치며 진격했다. 그렇게 많은 포탄을 맞고도 살아남은 독일군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없을 것 같았던 참호에서 독일군의 기관총들이 불을 뿜었다. 야포가 수비선 앞을 포격하고 로켓탄이 날아들었다. 큰 피해를 입은 러시아군은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전진했다. 다시 격퇴당했고 다시 전진했다. 그 다음 날에도 똑같이 전진했다. 일요일에도. 월요일에도. 화요일에도. 그렇게 2주일 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진격했다.
다연장로켓이 발사되는 모습입니다. 다연장로켓은 마치 러시아군의 카츄샤가 원조인 것처럼 알려져있지만 엄청난 숫자를 사용해서 그런 것뿐이고 독일군도 연막탄 발사용으로 오래 전부터 사용해왔습니다.자주포탄보다 제조단가가 훨씬 싸고 운용하는데에도 손이 많이 필요하지 않아서 위기에 몰리는 후반기에 많이 사용하게 됩니다. 이 녀석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이야기 끝의 참고자료에 덧붙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1m에 한 발의 포탄이 떨어졌는데 독일군이 어떻게 살아남아? 하시는 분도 계실텐데, 태평양 전선에서 산에 틀어박히 일본군에게 미군이 1m에 3발 정도로 엄청난 포탄을 쏟아부었는데도 열 몇 명이 살아서 항복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합니다. 물론 동굴 참호나 그런 것이 없는 그냥 작은 산 하나였습니다.
톨부킨은 매일 아침 제4 우크라이나 전선군(Front)의 지휘관들에게 "독일군 제6군을 완전히 전멸시켜라. 그 놈들이 없어지면 크리미아가 열린다. 이번 전투로 전쟁이 결정된다. 피해 따위는 얼마가 나와도 좋다"라고 강요했다.
우탄 수비선의 남부에 있는 멜리토폴(Melitopol)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러시아 보병의 시체가 산을 만들었고, 러시아 제11 전차군단은 수 백대의 T-34를 잃었다. 홀리트(Hollidt)의 제6군은 스탈린그라드의 악몽을 다시 겪고 있었다. 멜리토폴에서 벌어진 전투는 스탈린그라드 못지 않은 지옥이었다.
(우에스기 왈: 파괴되는 T-34의 숫자를 보면 황당할 정도인데도 계속 투입시킬 수 있었던 것은 T-34가 엔진과 포만 넣어 조립한다고 할 정도로 단순한 디자인이라 생산성이 좋기도 했지만, 전선에 버려진 전차는 그 지역을 탈환하면서 회수하여 수리하거나 부품으로 재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전장터에 버려지면 그대로 물러나야 하는 독일군은 1대 손실이 그대로 손실로 이어졌지만, 러시아군은 0.5대 손실로 줄일 수 있었습니다.)
스탈린그라드의 모든 건물이 전사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반면에, 2차대전 전투 중 가장 많은 피를 빨아들인 멜리토폴의 보그다노프카(Bogdanovka), 옥티야브르스코예 폴레 (Oktyabrskoye Pole),아키모브카(Akimovka), 다닐로-이바노브카(Danilo-Ivanovka), 그리고 많은 농장은 제대로 기록되어 있지 않은 전장터였다. 옥티야브르스코예 폴레를 지키던 제3 산악사단, 제258과 17 보병사단, 제13전차사단은 30번에 걸친 러시아군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62대의 전차를 주저앉혔다.
멜리토폴의 부근의 농장을 지키던 독일군 병사들은 대단한 방어전을 펼치고 있었다. 워낙 급박하게 상황이 돌아갔었기 때문에 왼쪽에서 오른쪽에서 함께 싸우던 아군이 몇 사단인지 알지 못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를 의지하면 싸웠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승산이 없는 전투였고 병력의 차이는 너무 크게 벌어져있었다. 10월 23일 멜리토폴이 함락되었고 러시아군은 이제 크리미아로 진격할 기회를 얻었다. 톨부킨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3개 보병군단과 400대의 전차를 전선에 투입했다.
10월 24일 톨부킨은 6개 보병사단와 전차를 동원해 멜리토폴 남서쪽의 제44군단을 공격했다. 개인참호에 있던 독일군은 순식간에 돌파당했다. 구축전차가 급하게 투입되어 러시아군의 전차 94대를 부순 끝에 일단 위기를 모면했다. 제13 전차사단, 제336과 307 포병연대, 전차엽병 대대 93이 전멸직전에 몰리면서도 물러서지 않은 덕분이었다.
10월 27일 오후, 제73 보병사단은 겨우 170명 만이 전선을 지키고 있었다. 3주 전에 제6군에 합류했을 당시의 99%의 병사가 전사나 부상으로 사라져버렸다. 제111 보병사단도 200명만이 남았고 제6군 전체로도 다음 전투에 25대의 전차만이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처참한 상황이었다. 물론 정비창이 후퇴하는 동안에도 전차를 수리해 전선에 복귀시켰지만 너무 많은 피를 흘리고 있어서 도저히 보충이 되지 않았다. 러시아군도 수 백대의 전차와 수 많은 병력을 잃었지만, 그래도 러시아군은 처음부터 10배가 넘는 병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전선에서, 모든 전투에서 독일군보다 최소한 1개 사단은 더 많은 병력을 동원할 수 있었다.
마침내 크레이제르(Kreyzer) 중장의 러시아 제51군이 멜리토폴의 제73 보병사단의 우익을 뚫는데 성공했고 독일군 전선에 15km 정도의 구멍을 냈다. 홀리트는 구멍을 메울 예비병력이 없었다. 마치 댐에 구멍이 나듯 전선의 구멍으로 러시아군이 밀려 들어왔고, 자카로프(Zakharov) 중장의 제2 근위군이 기계화 군단을 선두로 독일군의 저항을 가볍게 무시하고 전선의 구멍을 40km로 벌렸다. 이제 전선은 마치 댐이 무너져 내리듯이 완전히 붕괴되면서 남북, 둘로 나뉘어진 제6군은 포위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인 전투를 벌이는 위기에 몰렸다.
전력이 약했던 남부의 49군단이 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앞 뒤에 적을 둔 상태에서, 군단과 드니에페르 하류 사이에는 50km 정도의 사막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브라운(Braun) 소장의 제4 산악사단이 후퇴로를 여는 선봉대가 되었고 제13 전차사단의 얼마 남지 않은 전차를 나누어 선봉대에 전력을 보태고 측면을 엄호했다. 이들의 바로 남쪽에 있던 제370과 336 보병사단의 생존자와 루마니아 연대도 적의 포위를 뚫고 서쪽으로 살 길을 찾아나섰다. 이들의 생존본능이 얼마나 맹렬했던지 남쪽으로 진격하던 러시아 51군도 양 방향에서 후퇴하는 독일군을 제대로 막지 못하고 후퇴로를 열어줬다.
러시아 제2 근위군이 서쪽으로 맹추격을 했지만, 남부와 북부의 독일 수비병들은 크헤르손(Kherson)을 통해 드니에페르 강을 건넜다.
49군단은 포위망을 벗어났고 15,000대의 차량과 비슷한 숫자의 마차, 그리고 많은 중화기를 무사히 탈출시켰다. 러시아군은 막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독일군 제6군을 포위전멸시키려고 했지만, 6군은 크리미아와 니코폴(Nikopol) 사이에 자리잡고 전선을 재구축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지난 몇 개월 동안 히틀러가 드니에페르 상류와 중류에서 벌어지는 대위기에도 불구하고 병력을 빼내지 않았던 크리미아는 이제 완전히 고립되었다. 크리미아와 함께 독일군 제17군이 갇혀 버렸고 또 다른 지옥의 한 편이 열리고 있었다.
크리미아를 잃을 수 없었던 히틀러는 전선을 안정시키기 보다는 니코폴에서의 반격으로 크리미아와의 전선을 복구시키려고 합니다. 히틀러의 끊임없는 도전정신은 칭찬해줄만 하지만 한 번도 성공시키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였겠죠.
이제 참고자료로 독일군의 다연장 로켓을 간단하게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러시아군은 트럭에 실은 카츄샤가 주력이었지만 장비 지름신(?) 독일군답게 다연장 로켓도 매우 다양하게 시도했습니다.
가장 흔하게 사용된 Nebelwerfer I과 II입니다. 원래 연막탄 발사용으로 사용하다가 본격적인 포격용으로 사용됩니다.
보기에는 구시대적이지만 6km에 이르는 사정거리와 1분에 6발을 모두 발사할 수 있는 속도를 자랑합니다.
로켓탄은 15cm~32cm의 상당한 대구경이었습니다. 자주포와 달리, 한 명이 장전하고 발사할 수 있을 정도로 간편한 무기였습니다.
로켓탄 발사대가 더욱 원시적으로 변했습니다. 뭐, 어떻게 쏘든 잘만 날아가서 잘 터져주면 그만입니다.
적당한 사진을 구하지 못해서 플라모델 디자인을 가져왔습니다.
독일군은 잠수함 위에 이 발사대를 올려두고 포격하기도 했습니다.
8cm의 비교적 작은 로켓탄을 발사하는 마울티어 장갑차(가 아니군요. 반궤도를 보니 독일군 차량이 아닙니다. 프랑스군 차량이라고 합니다. 독일군이 워낙 다양한 차량을 개조해서 사용하다보니 저도 헷갈립니다)입니다.
대구경 로켓탄을 발사하는 장갑차도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제조단가와 운용 면에서 워낙 뛰어난 무기였습니다만, 정확도가 그리 높지 않다는 분명한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갑전력의 대명사 독일군답게 병력수송차에 별 짓을 다했습니다.
여기에서는 다연장 로켓발사대의 움직이는 포대 역할입니다.
각도 조절이 상당히 원시적입니다.
대구경 로켓탄의 폭발장면입니다.
저는 일반 포탄과 마찬가지로 탄두가 터지는 것인지 알았는데, 의외로 탄두는 도화선 역할을 하고 탄미의 장약이 터지는군요.
이렇게 터진다면 더 큰 살상력을 가지게 됩니다.
연합군이 독일군의 로켓탄을 왜 그렇게 무서워했는지 이해가 됩니다.
다연장 로켓의 실전 발사 동영상입니다. 연합군이 울부짓는 미미라고 불렀었는데 아주 독특한 발사음을 소리 높여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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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감사합니다! |